(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서울 금융감독원에서 2025년 업무계획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2025.2.10 mon@yna.co.kr
[우리금융 제공]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원 기자 = 우리금융그룹이 추진 중인 동양·ABL생명보험의 인수·합병(M&A) 계약에 포함된 이행보증금 몰취조항을 두고 우리금융과 금융감독원의 입장차가 갈리고 있다.
금융당국의 자회사 편입 승인 여부에 따라 이행보증금으로 제시한 1천549억원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인데, 금감원은 이러한 조건부 계약에 따라 상당 금액의 몰취 여부를 결정하는 계약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M&A에 정통한 법조계 관계자들은 국가간 계약이나 크로스보더 딜(Cross-border deal)의 경우 계약 불발로 인한 기회비용에 대비해 해당 조항을 두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견해가 많다.
◇ "계약 조항은 당사자간 사정"…사례도 다수
투자은행(IB)과 법조계 등은 금감원과 우리금융 측의 논리가 모두 타당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주식매매계약(SPA) 상 이행보증금 몰취 조항에 대해 '이례적'이라고 비판한 것은 금감원의 입장은 다소 과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대형 로펌의 M&A 전문 변호사는 11일 "당국 승인만을 기준으로 이행보증금 몰취조항을 거는 경우를 일반적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도 "이를 이례적이라고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M&A는 당사자 간 복잡한 사정을 모두 반영하게끔 설계돼 있어 무엇이 바람직하고, 무엇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면서 "매도인과 매수인 중 누가 우위인 지에 따라 M&A 계약도 영향을 받는다"라고 전했다.
실제 이행보증금 몰취조항을 담은 M&A 계약은 적지 않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또한 각국 경쟁당국의 승인 여부에 대한 계약금 몰취조항이 걸려 있는 경우다.
동양·ABL생명을 매각하는 중국의 다자그룹도 최근 투자금 회수(엑시트·Exit)에 나선 벨기에에서도 계열사를 매각하면서 계약서에 이행보증금 몰취조항을 담았다.
우리금융의 경우 지난 2019년 진행했던 동양·ABL자산운용 M&A 과정에서도 이번 사례와 같은 계약을 한 바 있다.
해외에도 비슷한 사례는 많다.
앞서 캐나다 2위 은행인 토론토도미니언은행은 지난 2022년부터 미국 중소형 은행인 퍼스트호라이즌의 인수 작업을 진행했지만, 규제당국의 전제조건을 맞추기 쉽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계약을 철회, 2억달러의 위약금을 지급했다.
지난 2018년엔 미국 앤트그룹이 미국 국제송금업체인 머니그램의 인수를 추진할 당시에도 미국 정부가 국가 안보상의 이유로 이를 승인하지 않으면서 3천만달러의 위약금이 발생했다.
다른 대형로펌의 M&A 변호사는 "몰취조항 관련 이슈는 딜이 결렬된 이후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론 케이스가 훨씬 많다고 볼 수 있다"며 "몰취조항의 사유가 통상적인 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지만, 당국 승인 여부를 귀책 사유로 볼지에 대해서는 당사자간 충분히 계약에 담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전했다.
◇ M&A 불발 가능성↑…후폭풍 우려 커진다
금감원의 강경한 기조가 지속되자 금융권 안팎에선 1조5천억원대의 대형 M&A가 좌초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M&A가 무산될 경우 우리금융은 물론 금융권 전반에도 상당한 파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우리금융 입장에선 1천549억원 규모의 위약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물론, 순이익의 95% 이상을 은행에 의존하는 구조를 바꿀 기회 자체를 놓치게 된다.
앞서 우리금융은 동양생명과 롯데손해보험을 저울질하다 최종적으론 동양·ABL생명의 '패키지 인수'를 결정했다.
여기엔 협상을 통해 동양·ABL생명 인수가격을 1조5천500억원 수준까지 낮출 수 있었던 점이 주효했다.
최대주주인 다자보험이 현재까지 양사에 투입한 자금이 2조원인 점을 고려하면 4천500억원가량 낮은 셈이다.
이번 계약금 몰취조항 또한 가격 협상을 받아들인 다자그룹 측이 원활한 엑시트를 위해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IB업계 다른 관계자는 "순이익이나 자산 사이즈가 열위한 롯데손보가 3조원 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동양·ABL생명 '패키지 인수'의 장점은 명확하다"며 "자본비율에 대한 부담도 있는 우리금융 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몰취조항이 현실화 될 경우 법적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는 점도 우리금융엔 부담이다.
자칫 경영상 배임을 묻는 주주대표 소송은 물론 투자자·국가간 분쟁(ISDS)으로 비화할 소지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 정부의 판단 지연에 따른 손해를 보상해 달라는 것이 론스타 사태의 핵심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같은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보험산업의 구조조정 측면에서도 적잖은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동양·ABL생명은 물론 BNP파리바카디프 등 이미 외국계 보험사 다수가 잠재적 M&A 매물로 분류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더해 산업은행 산하의 KDB생명과 예금보험공사가 매각을 주도하고 있는 MG손해보험, 사모펀드 소유의 롯데손보 등도 모두 매물로 나온 상태다.
하지만 시장에서 제대로 소화되지 않고 있다.
IB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현재 나와 있는 보험사 매물 상당수는 매번 '주인찾기'에 실패하면서 일종의 낙인이 찍혀 있는 상황"이라며 "동양·ABL생명까지 매각 무산 수순을 밟을 경우 보험 산업 전반의 부담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jwon@yna.co.kr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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