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양용비 기자 = 벤처캐피탈(VC)업계 펀드레이징 시장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모태펀드와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 등에서 투입된 공적자금 덕분에 간신히 버티고는 있지만, 은행 등 민간 출자자(LP)들의 투심은 여전히 냉랭하다.
뼈 아픈 건 금융권의 외면이다. 지난해 신규 벤처펀드의 LP 비중은 모태펀드가 22.4%로 전년 대비 9.2%포인트나 오른 반면 금융기관 비중은 18.1%로 9.3%포인트나 축소됐다. 대체투자 중에서도 후순위로 여기는 탓에 금융기관은 벤처펀드로 자금이 투입하는데 망설이는 경향이 뚜렷했다.
펀드레이징 가뭄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모태펀드가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출자기관이지만 VC업계에 '큰 형님' 역할을 하는 만큼, VC업계 펀드레이징에 도움이 될 만한 묘수를 고안하고 있다.
벤처생태계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묘안을 냈던 모태펀드였다. 코로나19로 투자 심리가 위축될 것을 우려해 신속한 투자를 권장하는 '투자촉진확약서'를 받아 가산점을 부여했고, 올해엔 초기투자·지역투자을 활성화하기 위해 관련 서약을 받아 가산점을 줬다.
문화·영화 계정에선 수년간 회수 재원으로 재투자를 할 수 있게 했다. 투자 건별로 원금 이상을 회수한 경우 수익 범위 내에서 조합원 총회를 거치지 않고 재투자가 가능하다. 다만 재투자를 포함한 총 투자규모는 약정총액의 150% 이내로 제한된다.
100억원으로 펀드를 결성해 투자 수익이 나면 별도의 조합원 총회 없이 150억원까지 투자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펀드레이징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한정된 재원으로 그 이상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영화나 문화 계정의 경우 한정된 모태펀드 예산이 타 계정에 비해 적어 최대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재투자를 허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평균 수익률이 높지 않은 만큼, 회수 재원으로 재투자해 수익률을 높이라는 취지로 영화·문화 계정에 재투자를 허용했다.
중진 계정의 경우 규약에 재투자를 못하게 명시하고는 있지만, 조합원 총회에서 전원 동의할 경우 한정적으로 가능하게 했다.
다만 회수 재원 재투자는 양날의 검이다. 펀드 약정총액보다 많이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투자 이후 상당 기간이 지난 자금으로 투자하는 만큼 위험 부담이 따른다.
재투자한 포트폴리오가 펀드 만기 내에 회수가 이뤄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골칫거리로 전락한다.
회수가 안되면 펀드 만기가 길어지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재투자한 포트폴리오가 성공적인 투자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기껏 좋은 성과를 낸 펀드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LP 입장에선 재투자로 인해 손실이 나는 부분을 경계한다"며 "회수를 못 하면 펀드 청산이 길어질 수도 있어 선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중소형 VC의 경우 재투자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대부분 중소형 펀드를 운용하는 만큼, 한정된 재원을 알차게 활용하기 위해서다. 재투자가 수익 창출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조금 더 도전적으로 투자하는 셈이다.
올해 모태펀드 루키리그는 유례없이 흥행했다. 40여곳에 가까운 운용사들이 모태펀드 GP 도전에 나섰다. 모태펀드에서 루키리그에 강조한 건 '도전정신'이다. 도전적 투자 대상이나 방식을 운용사가 자율적으로 제시하도록 했다.
도전을 위해선 더 많은 재원을 확보하면 좋겠지만, 펀드레이징 시장이 어려운 환경에서 루키의 특성상 큰 펀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중소형 VC가 주를 이루는 루키리그에 회수 재원 재투자를 허용하면, 도전적인 투자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회수 재원 재투자는 선택 사항이지 의무는 아니다. 누구는 도전을, 누구는 안정을 택할 것이다. 일단 도전자를 위한 무대만이라도 마련하는 게 어떨까.
ybyang@yna.co.kr
양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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