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적자 누적…기투자사 불리한 조건에도 실리콘투 투자 동의
(서울=연합인포맥스) 양용비 기자 = 명품 커머스 플랫폼 기업 발란이 기업회생 절차 개시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적자가 쌓이면서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이 말라 기업회생 채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발란의 이상징후는 이미 감지되고 있었다. 2023년 말부터 2분기 연속 흑자라고 설명했지만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B2B 신사업을 펼치겠다고 했지만, 현금 보유가 필수적이라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최근 발란이 실리콘투로부터 투자를 받았는데, 기존 투자사들은 불리한 조건을 모두 수용했다. 기업가치를 기존 3천억 원 수준에서 약 300억 원으로 10분의 1로 낮추고, 상환전환우선주(RCPS)도 보통주로 전환하는 데 동의했다.
기투자사 입장에선 실리콘투가 제시한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더라도, 발란이 자금을 수혈해 생존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회생 준비, 유동성 고갈이 배경
27일 법조계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발란은 최근 기업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하기 위해 대리인을 선임하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있다. 아직 기업회생을 신청하진 않았다. (연합인포맥스가 전일 단독 보도한 '"제2 티메프 터졌다"…발란, 기업회생 절차 밟는다' 제하 기사 참고)
투자업계에선 발란의 적자가 지속되면서 현금이 말라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한다고 보고 있다. 이미 수 년전부터 이상징후가 감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발란은 신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중소형 리테일러를 위한 B2B 서비스 부문을 '발란커넥트'로 분사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분사를 예고한 시점은 계획 발표 다음달인 2022년 11월이었다.
그러나 발란커넥트는 설립되지 않았다. 발란이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터라 법인이 설립되지 않은 점에 의문부호가 붙었다. 업계에선 발란이 현금 부족으로 발란커넥트 사업을 전개하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B2B 서비스인 발란커넥트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현금 보유'가 필수다. 발란커넥트는 부티크나 브랜드가 상품을 플랫폼에 등록하면, 국내 병행수입업체가 이를 주문한다. 이후 발란 측이 국내 병행수입업체를 대신해 상품 대금을 부티크 측에 지불한다. 최종적으로 국내 병행수입업체는 주문한 상품에 대한 대금을 발란 측에 지급하는 구조다.
요약하면 발란이 부티크에 선결제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발란이 국내 병행수입사로부터 정산받아야 한다. 발란이 부티크에 선결제하기 위한 충분한 현금을 보유해야 하는 셈이다.
관련업계 관계자는 "발란이 발란커넥트를 통해 이탈리아 부티크에 상품을 주문했는데 대금을 지급하지 못해 항의하는 일이 빈번했다"며 "이 때문에 이탈리아 부티크에서 법적인 조치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발란커넥트를 설립하려던 시점에 바이어사가 줄도산해 대금을 지급받지 못한 사례가 늘어났다는 게 발란의 설명이다. 이로 인해 발란커넥트를 설립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쌓이는 적자도 문제였다. 발란은 2023년 4분기부터 지난해 1, 2분기까지 3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고 밝혀왔다. 지속적인 분기 흑자로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개선될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설명해 왔다.
다만 취재 결과 이마저도 거짓으로 확인됐다. 2023년 4분기 흑자 여부는 파악되진 않았으나, 지난해 1분기와 2분기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1분기에는 3억원, 2분기에는 약 30억원 수준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란은 이에 에비따(EBITDA) 기준 흑자라고 설명했다. 흑자 규모도 "몇 천만 원 수준"이라며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에비따는 이자비용과 세금, 감가상각비를 제하기 전 순이익을 의미한다. 순이익에서 일부 비용을 빼기 전의 수치라 순이익보다 큰 숫자가 나온다.
에비따 흑자를 강조하는 기업 대부분은 적자 기업이다. 재무제표로는 영업손실이지만 영업활동만 고려하면 흑자를 내고 있다고 설명할 때 에비따를 활용한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발란은 실리콘투로부터 투자 유치하기 전까지 총 735억원의 자금을 유치했으나 지속적으로 현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며 "그러나 적자가 심해지면서 기존 투자사에서도 재투자를 선뜻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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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투자사에 불리한 투자 유치…"그래도 생존이 우선"
최근 발란은 실리콘투로부터 75억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투자 유치의 이면을 살펴보면 발란이 얼마나 현금이 급하게 필요했는지 알 수 있다.
실리콘투의 투자 조건은 기존 투자사에겐 불리했다. 직전 투자라운드에서 약 3천억 원으로 인정받았던 밸류에이션을 10분의 1 수준인 약 300억 원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기존 투자사들은 RCPS로 투자했는데 이마저도 보통주로 전환하는 조건으로 파악됐다. 이같은 조건에 따라 기존 투자사들이 보유한 RCPS는 지난달 28일 모두 보통주로 전환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리콘투가 투자금을 납입한 날이다.
이에 따라 기존 투자사들은 발란의 구주를 매각하거나, 상장 이후 매각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회수가 가능해졌다. 이같은 조건을 기투자사가 수용한 것은 발란의 생존이 우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존 투자사들이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더라도 일단 발란의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고 판단했다.
기존 투자사 관계자는 "발란 투자 건에 대해 이미 회계상 손실 처리를 완료했다"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실리콘투가 제시한 조건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ybyang@yna.co.kr
양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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