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ENG 대규모 손실 이어 '본드콜'까지…해외사업 난항(종합)
폴란드·말레이시아 사업서 각각 본드콜
"공기 연장·공사비 등에 이견"…법적 대응 예고
(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현대엔지니어링이 지난해 해외 프로젝트에서 1조원 이상의 손실을 본 데 이어 또다시 해외 대형 프로젝트에서 본드콜(계약이행보증금 청구) 사태를 맞이하면서 글로벌 사업 관리 역량에 의문이 제기됐다.
해당 현장들은 거의 완공하고도 준공 승인이 떨어지지 않거나 공사비나 하자보수 비용 등에 이견으로 발주처와 갈등을 빚어온 곳들이다.
무엇보다 해외 건설현장에서도 드물게 발생한다는 본드콜을 연이어 요구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해외 프로젝트 관리에 총체적 부실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울 것으로 예상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은 반기 보고서에서 8월 폴란드 석유화학 현장에 대해 발주처로부터 본드콜을 요구받았다고 밝혔다.
본드콜은 건설사가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발주처가 금융기관에 보증금을 청구하는 제도로 폴란드 발주처는 보증기관으로부터 1억750만유로(약 1천750억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받았다고 밝혔다.
해당 사업은 폴리머리 폴리체(Polimery Police) PDH/PP 플랜트' 프로젝트로 현대엔지니어링이 2019년 수주한 현장이다. 해당 공사의 완공 예정일은 2023년 8월 말이었으며, 도급액은 1조5천500억원이었다.
발주처는 폴란드 국영기업 그루파 아조티의 특수목적법인(SPC) 그루파 아조티 폴리올레핀스(Grupa Azoty Polyolefins)다.
외신에 따르면 회사는 시공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계약 불이행을 이유로 보증기관 '리버티 뮤추얼 인슈어런스 유럽'으로부터 1억750만유로(약 1천750억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받았다고 밝혔다.
발주처가 본드콜을 요구했다는 것은 그만큼 협상이 원활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발주처는 지연에 따른 계약상 벌금 1억1천180만 유로(약 1천820억원)도 청구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공시에서 "공사비 인상 및 공사기간 연장에 대한 양사간 이견은 중재를 통한 법적 조치를 통해 해결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라며 "법적 판단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손실 금액을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6월에는 말레이시아 전력 플랜트 프로젝트에서도 본드콜이 있었다.
해당 현장은 에드라 에너지(Edra Energy)가 2017년 5월에 발주한 연간 발전용량 2천242MW 규모의 복합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으로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이 수주했다. 총 사업비는 9억1천800만 달러(약 1조282억 원)로 알려졌다.
현대건설은 해당 건에 대해 "말레이시아 전력플랜트 현장의 발주처 경영진 교체 이후 하자보수 추진 실적 저조를 사유로 본드콜 요구를 받았다"고 공시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해당 현장에 대한 현대건설의 지분은 15%"라며 "본드콜은 아직 확정 사안이 아니라 실적에 반영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발주처 경영진은 올해 4월에 교체됐다. 해당 현장은 2022년에 준공이 완료됐으며, 그해 상업 운전에 들어갔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말레이시아건은 "해당 사업 종결을 앞두고 당사와 발주처 간 이견이 있어서 본드콜이 요청됐다"라며 "현지 법원에 본드콜 집행 가처분을 신청했으며, 현재 현지 법원이 본드콜에 대한 '임시집행 정지(임시 가처분) 명령'을 내린 상태"라고 설명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본드콜은 굉장히 흔하지 않은 일"이라며 "본드콜은 공기의 심각한 지연 등 몇 가지 요건이 있어 이를 촉발할 경우 본드를 발급해준 금융기관에서 이를 행사한 발주처에 돈을 주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폴란드건과 관련해 "돌려받을 것으로 예상했던 보증금을 회수 못 하게 되면 회사 입장에서는 없었던 부채 1천500억원이 생기는 셈"이라며 "중재 결과에 따라 회사에 상당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현대엔지니어링은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정유공장과 사우디아라비아 자푸라 가스전 사업장에서 1조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대규모 손실에 이어 또다시 해외 프로젝트에서 손실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현대엔지니어링의 리스크 관리 체계가 구조적으로 취약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촉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로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현대엔지니어링은 보증금을 되찾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손실을 확정 짓고 추가 배상 부담까지 떠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투자자와 금융기관의 신뢰가 흔들릴 경우, 해외 신규 수주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대엔지니어링은 "법적 절차를 통해 대응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해외 프로젝트 관리 부실의 경고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발주처가 공사 지체에 대해 현대엔지니어링의 책임을 물은 것"이라며 "현엔이 이를 빨리 해결했어야 했는데, 시간을 끌다 보니 본드콜까지 가게 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본드콜은 마지막 수단으로 하는 것"이라며 "보증기관이 지급을 했기 때문에 현엔에 구상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4분기 1조4천315억원가량의 영업손실을 입었다고 공개한 바 있다. 연간으로는 1조2천401억원 규모다.
당시 손실은 현대엔지니어링이 지난해 4분기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프로젝트에서 원가 상승분 1조1천억원가량을 일시 반영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사우디 자푸라 프로젝트에서 투입물량이 당초 예상 설계 대비 20% 이상 늘었다는 이유로 손실을 일시 반영했다.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프로젝트는 2018년 12월에 착공해 당초 올해 9월 준공 예정이었으나 15개월가량 공기가 연장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향으로 당시 한국기업평가는 현대엔지니어링의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했고, 나이스신용평가도 4월에 현대엔지니어링의 장기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부여했다.
양사는 모두 현대엔지니어링의 해외 사업장 손실로 재무건전성이 악화할 것으로 판단했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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