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남승표 기자 = 시인과 촌장의 노래 중 '풍경'이라는 곡이 있다. 가사가 아름다워 가끔 들어보고는 한다.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세상 풍경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짧은 가사지만 음률을 따라 반복되는 가사에서 복잡한 세상일이 모두 정리되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는다. 이 노랫말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이 열렸던 헌법재판소에서, 국회를 대리했던 장순욱 변호사가 최후진술에서 인용해 다시 유명해지기도 했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풍경은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그 과정까지 마냥 아름답지는 않다. 틀어진 것은 틀어진 대로 이유가 있다. 틀어진 질서 속에서 자리 잡고 있는 이해관계를 바로 잡는 과정은 파열음을 낸다. 다하고(窮), 바뀌고(變), 맞춰지고(通), 오래가는(久) 과정이 순조롭기만 하다면 쇠락해서 없어지는 것들이 왜 있겠는가.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외벽에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 편이 게시돼 있다. 2020.8.31 yatoya@yna.co.kr
지난 6월 27일 금융위원회는 관계기관 합동으로 '가계부채 관리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강남 3구에서 비롯된 아파트 가격 급등이 서울 전역으로 확산하는 데 따른 대응책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토지거래허가제를 두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이후 서울 아파트 시장은 급등세를 보였다. 일부 전문가는 이를 두고 '좁고 뾰족한 강세'라고 표현했지만 무주택자의 '포모(FOMO, 투자에 뒤처질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상태를 가리키는 약어)'를 자극하고 있었고 정책당국의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늦었던 만큼 정책은 다소 과격한 양상을 띠었고 이에 대한 언론보도 제목도 '초강수, 극약처방, 칼 빼 들었다, 전면 금지' 등 자극적인 표현이 다수였다. 그 가운데서도 눈길을 끄는 제목은 이번 정책에 대해 "주거 사다리 끊었다"라든가 "현금 부자들만 집사겠네", "돈 있는 사람만 청약 가능", "능력 안 되면 고가주택 살 생각 마", "현금부자만 살판났다" 등이었다.
사실 정부의 가계부채관리의 원칙을 생각했다면 대출 규제가 곧 나오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정부는 이전부터 가계부채를 명목성장률 범위 내에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절반 아래로 꺾인 시점에서 가계대출 허용한도가 축소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이런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파격, 충격 같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무능을 감추지 않았다. "능력 안 되면 고가주택 살 생각 마"라는 기사는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자괴감마저 느끼게 했다. 공론의 장이 아닌 갈등과 대립, 반목의 장을 만드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었던가. 벼락거지라는 부동산업계 마케팅 용어를 끌어들인 것도 모자라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는 것까지 능력으로 포장해 장려하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감당하려는 것인가.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서울 집값 급등세에 이달에도 가계대출 증가액이 7조원에 육박하며 5개월 연속 증가세를 지속했다. 이에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6억원으로 묶는 전례 없는 초고강도 규제를 하면서 다음 달부터 '고액 영끌' 수요는 크게 꺾일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29일 서울 시내 부동산 중개업소에 게시된 대출 등 상담 안내. 2025.6.29 nowwego@yna.co.kr
지난 2024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과 연방정부의 인구조사국이 공동 수행한 연구(The impacts of rent burden and eviction on mortality in the United States)에 따르면 소득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부담이 클수록 사망률이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미국지역사회조사(ACS)자료를 통해 월세가 10포인트 오른 임차인은 그렇지 않은 임차인에 비해 사망률이 8% 올라갔다고 밝혔다. 월세 부담에 이어 퇴거 위협까지 받게 되는 경우 사망률이 더 큰 폭으로 올라갔다. 연구자들은 이를 근거로 주거문제는 경제가 아닌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이 대출한도를 6억원으로 설정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6억원으로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정한 것은 소득의 30% 이상을 대출 원리금 상환에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담보인정비율(LTV)이 금융기관 보호를 위한 규제이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라는 것은 상식이다.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것을 두고 자산 취득의 기회를 박탈한다고 강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월가의 투자자 워런 버핏은 수영장에 물이 빠지면 누가 벌거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벌거벗고 수영하던 자들이 필사적으로 수영장에서 물을 빼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그런다고 이 물이 영원히 고여있을 수는 없다. 조용히 수영장에서 나오는 것이 그나마 부끄러움을 덜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자. (산업부장)
spnam@yna.co.kr
남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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