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두 사태' 후 높아진 진입 문턱…"진입은 쉽게, 퇴출은 빠르게" 목소리 커져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한때 이차전지주가 호령했던 코스닥 시장의 주도권이 바이오 기업으로 재편된 가운데 그 중심에는 '기술특례상장' 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적자 상태에서도 기술력 하나만으로 증시에 입성한 기업들이 잇달아 '잭팟'을 터뜨리며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권을 장악한 것이다.
알테오젠이 정맥주사용 의약품을 피하주사(SC) 제형으로 바꾸는 플랫폼 기술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획득했고 '삼수' 끝에 상장한 디앤디파마텍은 파트너사 '멧세라'가 글로벌 빅파마 화이자에 인수될 가능성이 거론되며 기대를 모은다.
◇'특례'가 키운 바이오 대어들, 코스닥 지형을 바꾸다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30개 기업 중 8곳이 특례상장(유니콘 특례 포함)을 통해 증시에 입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총 1위 알테오젠을 필두로 펩트론(3위), 에이비엘바이오(8위), 리가켐바이오(9위), 보로노이(16위), 디앤디파마텍(26위), 올릭스(29위)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상장 당시에는 뚜렷한 매출이나 이익을 내지 못했지만, 기술의 잠재력을 인정받아 자본시장에서 성장 자금을 조달했다.
특히 2014년 기술특례로 상장한 알테오젠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알테오젠은 최근 글로벌 제약사 머크(MSD)와 맺은 기술수출 계약이 순항하면서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의 SC제형이 FDA 승인을 받았다. 상장 당시 1천억원대 초반에 불과했던 시가총액은 현재 25조원을 훌쩍 넘겼다.
지난해 5월 세 번의 도전 끝에 상장한 디앤디파마텍 역시 기술특례 제도의 수혜자다. 파트너사인 미국 비만·대사질환 신약 개발사 멧세라가 화이자의 유력한 인수합병(M&A) 후보로 부상하면서 동반 가치 상승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혁신 기업의 등용문 역할을 하던 기술특례상장 제도는 최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상장 직후 실적이 급감하며 '뻥튀기 상장' 논란을 일으킨 반도체 팹리스 기업 파두 사태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상장 직후 예상 실적에 크게 못 미치는 '어닝 쇼크'를 기록하며 투자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기 때문이다
이후 금융당국과 거래소는 기술특례 심사에서 기술성 자체보다 매출이나 라이선스 아웃(기술수출) 계약 등 가시적인 '사업성'을 깐깐하게 보기 시작했다.
한 벤처캐피탈(VC)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기술성을 위주로 평가했다면, 파두 사태 이후로는 '언제 사업화해서 이익이 나겠느냐'는 식의 사업성 검증이 대폭 강화됐다"며 "이 때문에 기술력 있는 바이오텍들이 상장 문턱에서 좌절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기술평가 등급을 받고도 거래소 심사 단계에서 탈락하거나 스스로 상장을 철회하는 기업이 속출하면서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진입 쉽게, 퇴출 빠르게"…나스닥 모델이 해법?
상황이 이렇자 시장에서는 심사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잠재력 있는 기업의 진입을 원천 차단하기보다, 일단 시장에 들어올 기회를 넓혀주고 시장의 평가에 따라 부실기업을 신속하게 퇴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금융당국의 최근 정책 방향과도 궤를 같이한다. 금융당국은 올해 초 상장 적격성 심사 제도 개편안을 발표하며 부실기업 퇴출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상장폐지된 기업은 이미 60곳을 넘어섰다. 코스닥 상장 유지에 필요한 시가총액과 매출액 기준도 단계적으로 상향되는 등 '퇴출 시스템'은 강화되는 추세다.
최근 정부 기조 변화에 따라 경색됐던 심사 분위기가 다소 풀리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RNA(리보핵산) 치료제 개발 기업 알지노믹스는 최근 상장예비심사를 신청 두 달 만에 통과했는데, 이는 올해 코스닥 신규상장 기업 중 가장 빠른 속도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미국 나스닥 시장처럼 상장은 비교적 쉽지만 성과를 못 내는 기업은 빠르게 퇴출되는 구조가 선순환을 만든다"며 "거래소가 모든 옥석을 가리려 하기보다 진입 허들을 낮추고, 투자자들이 기업 정보를 바탕으로 직접 판단하고 책임지는 시장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kslee2@yna.co.kr
이규선
kslee2@yna.co.kr
금융용어사전
금융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