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미국을 장기 침체로 몰아세웠던 2008년 국제금융위기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에서부터 시작했다. 신용도가 낮은 계층을 대상으로 시행한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은 우량채권과 비우량채권을 섞음으로써 전체 신용도 향상을 꾀할 수 있다는 금융공학적 발상에서 시작했다. 이런 발상은 개별 채권의 사고 확률을 따지는 세계에서는 놀라운 발견이었지만 주택시장 전체가 침체에 빠질 경우를 간과하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미국의 전체 주택가격이 빠지기 시작하자 프라임과 서브 프라임을 가릴 것 없이 모두 부실화하기 시작했고 한때 국제금융계를 주름잡던 리먼 브러더스, 베어스턴스 등 대형 금융기관도 역사의 한 장으로 사라졌다. 아울러 미국의 주택금융 보증기관이던 패니메이와 프레디 맥은 밀려오는 모기지 보증청구를 감당할 수 없어 국유화되고 말았다. 경제학자들이 대침체(the great recession)라고도 부르는 이 사건은 2007년~2009년의 경제상황을 가리키지만, 실제 미국 경제가 대침체의 영향을 빠져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버블 세븐이라 불리던 서울·수도권의 아파트값 급등 지역에서 가격이 내리기 시작했던 것도 2007년부터였다.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은 2014년까지 바닥을 기어야 했다. 지금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하우스 푸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집을 가졌지만 가난하다는, 형용 모순의 단어가 거부감 없이 통용됐다. 처음에는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하던 정부도 미분양 주택 매입과 같은 반시장적인 대책을 내놓는 등 주택가격 안정화 정책을 시행했다.
비록 집값 하락의 고통은 컸으나 우리 경제는 미국과 같은 대침체는 피해 갈 수 있었다.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하자던 정책 당국자는 있었지만 리먼 브러더스처럼 파산한 금융기관은 없었다. 일부 학자들은 우리 경제가 집값 하락의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 달리 주택시장과 금융의 연계가 느슨했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주택공급 부족으로 서울 집값이 제2의 폭등 조짐을 보이는 시점에서 옛날이야기를 재론하는 것은 두 개의 기사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채권발행 시장을 취재한 연합인포맥스의 피혜림 기자는 지난 24일 주택금융공사(HF)가 실시한 주택저당증권(MBS) 입찰에서 10년물 대부분이 미매각됐다고 보도했다. HF는 당초 10년물 MBS 1천억원을 발행하려 했으나 응찰규모가 100억원에 그쳤다. 피혜림 기자는 HF의 MBS가 미매각되는 사례가 드문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대규모라는 점에서 우려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HF가 발행하는 MBS는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을 기초 자산으로 삼는 유동화 증권이다. 쉽게 말하자면 은행이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줬다는 증서를 HF에 팔고, HF는 이것을 다시 묶어서 투자자에게 판다. 이렇게 해서 마련된 돈은 다시 집을 담보로 빌려주는 돈이 된다. 아파트를 담보로 돈을 빌린 사람이 갚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HF는 MBS의 지급을 보증한다. 따라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결과적으로는 HF가 대신 갚아주는 형태의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주택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경로인 MBS에서 미매각이 발생한 시점에서 주택시장으로 신용을 공급하는 공공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에 착수했다. 연합인포맥스에서 건설부동산 분야를 취재하는 윤영숙 기자는 전세사기 등으로 3년 연속 적자를 입은 HUG가 1조원 한도로 채권 발행에 나선다고 보도했다. HUG의 채권 발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HUG는 지난해에만 전세보증사고와 분양보증사고 등으로 6조940억원을 대신 갚았다. HUG는 이달 24일 2년물 1천억원, 3년물 2천억원 등 총 3천억원의 채권을 발행하려 수요예측을 시행했는데 1조2천90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았다. HUG는 최대 5천억원까지 채권을 발행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해당 자금은 보증사고에 따른 대위변제와 미분양주택 환매 사업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아직은 별개로 보이는 두 기사를 언급한 이유는, 우리 경제도 서서히 금융을 매개로 주택시장과 연계가 강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가계의 재무건전성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점도 우려스럽다. 우리나라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1년 194%로 정점을 찍고 소폭 하락했지만 2023년 186.5%로 여전히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은 이 비율이 150% 아래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도 올해 1분기 기준 89.4%로 세계 주요국과 비교해 높은 수준이다. 가계부채가 소득이나 경제규모에 비해 과도할 경우, 집값 하락 혹은 외부의 충격이 왔을 때 우리 경제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집값 하락의 충격이 금융으로 전이될 수 있는 매개고리도 계속 등장하고 있다. 마침 주택시장 수요관리를 책임지던 금융위원회가 해체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런 불안이 기우에 그치도록 금융당국이 적극적인 가계부채 관리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산업부장)
spnam@yna.co.kr
남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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