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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헌의 단상] AI 패권전쟁과 금산분리 완화

2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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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인공지능(AI) 산업의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되는 세상이다.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초거대 AI 모델 등 수조원의 돈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AI 강화를 위한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문제는 이 돈을 어디서 구하느냐에 있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결합을 제한하는 이른바 '금산분리' 규제의 완화 필요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이유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와의 만남에서 "AI 산업에 한해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상징적 장면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샘 올트먼 접견

연합뉴스 자료사진

금산분리 규제는 산업자본(기업)과 금융자본(은행·증권 등)이 손잡는 걸 막겠다는 제도다. 1980년대 대기업이 은행을 사금고처럼 쓰는 걸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오늘날의 산업 환경은 과거와 사뭇 달라졌다. IT 기술의 발전으로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가 도래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전략 산업에 대한 자금 조달을 위해 금융 기능을 적극 활용한다. 애플은 금융 서비스를 하고, 소프트뱅크는 펀드를 굴리고, 구글은 핀테크를 넘나든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이러한 흐름에 뒤처져 있다. 현행 금산분리 규제 하에선 지주회사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설립하더라도 100% 자회사로 제한되며, 외부 자금 조달이나 차입이 어렵다. 위탁운용사(GP) 역할도 제한돼 대규모 펀드 조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도체 공장이나 AI 데이터센터처럼 수조 원이 투입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엔 제도적 제약이 크다.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할 경우 기대되는 긍정적 효과는 분명하다. 기업들이 전략 산업에 대한 투자 재원을 보다 유연하게 조달할 수 있다. 삼성과 SK가 추진 중인 오픈AI 전용 데이터센터 건설이나 고성능 D램 공급 확대는 그 대표적 사례다. 민간 자본을 활용한 혁신 생태계 조성도 가능해진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하거나 공동 펀드를 조성함으로써 기술 혁신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규제 완화를 통해 한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보다 공격적인 투자와 협력을 펼칠 수 있단 얘기다.

'SK AI 데이터센터 울산' 기공식 세리머니

연합뉴스 자료사진

우리 사회는 부정적 효과를 먼저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금산분리의 본래 목적은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독점, 불공정 거래, 사금고화 등의 폐해를 방지하는 데 있다. 규제 완화가 자칫 대기업의 금융 지배력 강화로 이어질 경우 금융 안정성과 소비자 보호에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정치권 내에서도 이 사안은 논쟁적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금산분리 원칙을 당 강령에 명시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 없이는 제도 변경이 어려운 구조다.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가 앞서게 되면 누가 되었든 과감한 결단을 내리긴 쉽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이 AI를 콕 집었듯 금산분리 규제 완화는 우선 제한적인 범위에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전면적인 규제 완화가 아닌 AI와 반도체, 에너지 등 국가 전략산업에 한정해 예외를 두는 식이다. 다만, 여기에도 독점 방지와 금융 안정성을 위한 안전장치가 병행돼야 한다. 포지티브 방식의 제도 설계도 요구된다. 허용 가능한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되 감독은 강화하는 방식이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공론화 작업은 필수다. 정치권, 시민사회, 산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논의 구조를 마련해 제도 개편의 정당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AI 시대의 경쟁은 자본과 기술의 속도전이나 다름없다. 기술 혁신을 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기업들이 이 돈을 자유롭게 조달하기 어렵다면 혁신은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규제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조정되어야 하는 법이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조엘 모키어와 필리프 아기옹, 피터 하윗 교수는 기술 혁신이 경제 성장의 핵심이며, 이를 위해선 자본과 제도가 제대로 맞물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이 자유롭게 투자하고 경쟁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금산분리는 단순한 법적 제한을 넘어 기업의 윤리적 행동을 강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럼에도 혹여 지금의 이 규제가 기술혁신의 흐름을 막고 있다면 시대에 맞게 손질하는 게 타당하다. 대한민국이 AI 시대의 중심에 서려면, 아니 적어도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편집국 금융부장)

chhan@yna.co.kr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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