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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세협상 타결 위한 키는 통화스와프 아닌 3천500억弗 '한도'

2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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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석 달째 교착 국면에 빠졌던 한미 관세협상이 본격적으로 다시 재개되면서 최종 타결 상황까지 이어질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동시에 미국 워싱턴DC로 날아가 각자의 '카운터 파트너'와 긴밀한 협의를 진행 중인 가운데 밀당(밀고 당기기)을 통한 최대한의 성과를 얻어낼지 주목된다.

다만, 3천500억달러 대미투자 패키지의 한도와 구조를 둘러싸고 여전히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있는 만큼 서로의 이견차만 확인한 채 발길을 돌릴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남아 있는 상태다.

그간 관세협상의 선결 과제인 것처럼 여겨졌던 한미 통화스와프는 이번 한국 협상단의 최우선 논의 사항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3천500억달러 대미투자 패키지에서 우리 정부가 부담해야 할 '현금'의 한도와 운영 방식 등이 최종적으로 합의되지 않을 경우 통화스와프 체결 여부는 의미가 없다는 게 협상단의 판단이다.

◇ '통화스와프'는 방어 수단…본체는 '현금 vs 출자' 간극 좁히기

한미 양국이 관세협상의 물리적 마지노선으로 고려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양국 간 논의는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상무부 청사를 찾아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회동했다.

이 자리에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도 함께했다.

그간 미국 측은 상호 관세를 낮춰주는 조건으로 한국이 참여할 대미투자 펀드에 대해 전액 현금 또는 선불(capital-upfront) 투자하는 방식을 요구해왔다.

심지어 투자 규모를 일본 수준인 5천500억달러에 가깝게 증액할 것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국은 현금 출자 비중을 최소화하고, 나머지는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대출과 보증 방식으로 위험을 분산하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당초 정부가 생각한 직접출자(equity) 비중은 전체의 5% 미만이었다.

직접적인 지분투자는 낮게 유지하되, 안정적인 수익 분배와 투자자 제어권 확보를 함께 담보하고자 했다고 전해진다.

3천500억달러는 한국의 외환보유액의 80%를 훌쩍 넘는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수치일뿐더러 최근 5년간 한국의 해외직접투자(FDI) 누계보다 많은 규모다.

이를 현금으로 투자하는 것은 한국 정부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숫자다.

이재명 대통령조차 이에대해 '1997년 금융위기가 재발할 위기'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미국 측에 보낸 대미투자펀드 양해각서(MOU) 수정안에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안을 제안했다.

외환보유액을 직접 활용하지 않고 투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즉, 통화스와프는 협상의 '조건'이 아니라, 대체 결제수단을 둘러싼 전략적 방어 논리인 셈이다.

쉽게 말해 미국 측이 사실상의 '전액 현금' 방식을 고수한다면 무제한 통화스와프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맞받은 것이다.

어찌보면 미국 측 요구를 받아들일테니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해달라고 요구한 게 아니라 '당신들의 요구가 얼마나 무모한지 판단해 달라'고 되받아친 것과 같다.

김용범 정책실장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등 대통령실 참모진들이 재차 통화스와프에 대해 '필요조건'일 뿐 또 다른 '충분조건'이 필요하다고 언급해 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통화스와프는 협상 테이블에서 나올 수 있는 하나의 '논리적 카드'일 뿐, 협상의 본질은 펀드 구조"라며 "기존에 큰틀에서 합의된 투자 구조가 유지된다면 통화스와프는 없어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방식의 통화스와프에 대해서도 "실효성도 실익도 없다"고 보고 있다.

통화스와프 체결 여부가 관세협상의 성패를 가늠하는 기준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얘기다.

◇ 협상 2차전 시동…중심 축은 '김정관-러트닉'

현재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직접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실질적인 연간 투자 여력은 200억~300억 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는 여전히 미국이 제시한 3천500억달러 규모와 차이가 크다.

결국 이 간극을 얼마나 좁히느냐가 협상의 최대 관건인 셈이다.

협상 과정에서 직접투자 비중이 10~15% 수준으로 확대될 경우, 달러 유동성 확보를 위한 제한적 통화스와프가 필요할 수도 있다.

앞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2020년 팬데믹 당시 300억~6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외환시장의 중론이다.

물가 안정과 통화 긴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연준에, 한미 통상협상은 금융안정이라는 목적과 직결되지 않아서다.

우리 정부 역시 시장 안정성 측면에서 제한적인 통화스와프는 반가운 카드가 아니다.

전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역시 "무제한이든 유제한이든 재무부와의 통화서와프 논의에 진전이 없다"고 못박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서 특수목적법인(SPC)에 원화를 예치하고 재무부가 특별인출권을 활용하는 간접적인 방식의 통화스와프의 활용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스와프 조건을 두고 또다시 이견이 노출될 수 있어 녹록지 않은 대안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실제 이러한 방식을 선호하지 않고 있으며 크게 무게도 두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외국 중앙은행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를 담보로 달러를 확보하는 대출인 FIMA 레포 방식도 거론되지만, 사용 범위가 제한적이고 아직 전례가 없어 현실성이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때문에 우리 정부는 직접투자 또는 출자 비중을 최소화해 외환시장 부담을 줄이는 게 최선의 전략이다.

통화스와프가 협상의 '결정 변수'가 아닌, 구조 조정의 '보조 변수'에 가까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이번 협상의 실질적인 중심축은 대미투자의 한도를 결정할 김정관 산업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인 셈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 간의 협의는 외환시장 안정이나 금융 협력 논의의 연장선일 뿐이다.

앞서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이 대통령과 김 정책실장이 베선트 장관을 만나 한국의 외환시장 상황을 이해했다지만, 이는 통화스와프 체결을 담보했다기 보단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의 입장을 전달해 달라는 취지로 읽힌다.

1990년대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에 몸담으며 투자를 배우며 조지소로스와 멘토-멘티 관계를 유지할 정도로 외환 투자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베선트에게 우리 정부의 상황을 좀 더 쉽게 납득시켜 도움을 요청하고자 한 셈이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이번 협상의 본질은 투자 펀드 구조를 둘러싼 재무적 공방"이라며 "통화스와프는 외교적 상징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백악관 예산관리국 방문한 김용범 실장과 김정관 장관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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