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교착 국면에 빠져들면서 시계제로의 상황으로 내몰렸던 한미 관세협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열흘 앞두고 급반전하면서 사실상 타결까지 초읽기에 들어갔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등이 미국을 찾아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등과 밀도있는 협의를 통해 그간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던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와 관련한 구체적 방안에 대해 합의 수준까지 접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2박4일간의 방미 일정을 마치고 19일 오후 귀국한 김용범 정책실장은 인천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나 "이번 방미 협의에서는 대부분의 쟁점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다"고 밝히고, "방미 전보다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계기로 타결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김 정책실장은 "여전히 조율이 필요한 남은 쟁점이 한두 가지 있다"고 전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타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사실상 타결 수준까지 갈 정도로 양국 간 협의가 잘 진행됐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날 김 정책실장이 밝힌 내용을 토대로 보면 3천500억달러 대미투자 방식과 관련해선 우리 측의 요구가 상당 부분 수용된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김 정책실장은 "3천500억달러 숫자는 7월31일 합의된 내용이라 유념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대미투자 규모에서는 변동이 없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우리나라가 감당하기에는 큰 규모여서 규모 자체를 줄이는 것도 우리 입장에서는 중요한 협상 대상이 될 수 있었겠지만, 미국 측이 수용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신, 투자 방식에서는 우리 측 입장이 상당 부분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간 미국 측에 끊임없이 우리 외환시장의 상황을 고려해 달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3천500억달러 대미투자와 관련, 전액 현금의 선불(capital-upfront) 투자라는 점을 주장해 왔는데, 이는 자신의 임기(3년내)에 3천500억달러를 현금으로 가져오라는 압박이었다.
하지만, 이는 우리 입장에서는 절대로 수용할 수 없는 요구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2의 외환위기'라는 말까지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김 정책실장이 "대한민국의 외환시장에 미치는 충격, 이 부분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이해하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사실상 미국이 요구한 '선불 투자'에 대한 이견은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이번 협상 과정에서 우리 측이 요구한 장기 분할 투자 방식에 대해 미국 측이 동의 수준의 의사를 보인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총액(3천500억달러)에 변동을 주지 않는 대신에 투자 규모의 시한을 대폭 넓혀 우리 외환시장의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주는 방식으로 의견을 모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우리 외환시장이 견딜 수 있는 연간 규모가 200억~300억 달러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대 10년 정도의 기간 동안 3천500억달러를 투자하는 방식으로 양국이 합의를 봤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전액 현금인지, 직접출자와 대출, 보증 등을 엮은 방식인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의견 접근을 이뤘을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현금 투자 비중을 최소화하고, 나머지는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대출과 보증 방식으로 위험을 분산하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당초 정부가 생각한 직접출자(equity) 비중은 전체의 5% 미만이었다.
김 정책실장은 '상호 호혜적인 프로그램'이 돼야 한다는 점도 언급했는데, 이는 그간 정부가 견지해 온 '상업적 합리성'과 직결된다.
미국은 대미투자 패키지가 프로젝트의 선정 권한과 더불어 창출된 수익의 90%를 자신들에 귀속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우리 정부는 투자 프로젝트의 사업성이 담보돼야 하며, 국내 기업이 유의미하게 참여할 수 있을 것, 그리고 원금 회수 이전의 수익 배분은 우리에게도 돌아와야 한다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직접적인 지분 투자는 낮게 유지하되, 안정적인 수익 분배와 투자자 제어권 확보를 함께 담보해야만 '상업적 합리성'을 챙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이 부분에서는 양국간 이견이 여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정책실장이 언급한 '남은 조율할 부분'이라는 게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일단 양국이 3천500억달러 대미투자 구조와 방식에서 상당 부분의 유의미한 의견 접근을 이뤘다면 그간 쟁점으로 떠올랐던 통화스와프는 후순위가 될 가능성이 있다.
외환시장 안정성 측면에서 통화스와프를 체결할 경우 우리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지만, 체결 주체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라는 점에서 양국간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통화스와프 체결에 상당히 미온적인 입장을 보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특히 이번에 양국이 3천500억달러 대미투자의 방식을 '장기 분할 투자' 방식으로 접점을 찾았다면 사실 통화스와프를 체결할 유인은 크게 떨어지게 된다.
(영종도=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한미 관세협상 후속 논의를 위해 미국 워싱턴DC를 찾은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오른쪽)과 여한구 통성교섭본부장이 19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10.19 ondol@yna.co.kr
(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미국 상무부 청사에서 한미협상을 마친 뒤 건물을 나서고 있다. 2025.10.17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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