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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전'에도 더 못나간 한미 관세협상…'APEC 타결'은 어려울 듯

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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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왼쪽)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한미 관세협상 추가 논의를 마치고 2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25.10.24 hwayoung7@yna.co.kr

(서울=연합인포맥스) 온다예 기자 =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양국이 관세협상의 최종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한 막바지 협의를 진행했지만 여전히 핵심 쟁점에서의 입장 차만을 확인했다.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 금융패키지를 두고 일부 진전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몇몇 사안을 두고 여전히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서 APEC을 계기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극적인 타결 가능성은 멀어져 가는 분위기다.

물론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톱다운'식의 최종 합의를 할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대미투자에 대한 인식 차를 좁히지 못한 상태에서의 극적인 모습을 연출하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4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함께 대미 협상을 마친 뒤 귀국해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지에서 말씀드린 대로 쟁점에 대해서 일부 진전은 있었다"면서도 "핵심 쟁점에 대해서 아직도 양국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 주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전에 협상이 타결될 것으로 보는지 묻는 말에는 "이제 추가로 대면 협상할 시간은 없다"며 "APEC은 코앞이고 날은 저물고 있는데, APEC 계기 타결을 기대한다면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그러면서 "협상이라는 것이 막판에 또 급진전되기도 하기 때문에 끝까지 노력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대미투자를 둘러싸고 그동안 양국간 첨예하게 의견이 갈렸던 '현금 투자'에 대해선 한국의 외환시장 상황을 고려해 미국 측이 한발 물러서면서 '진전'은 있었지만 규모와 방식, 수익배분 등의 쟁점에선 여전히 합의에 이를 정도는 아니라는 말로 해석된다.

특히 APEC을 '타결 목표'로 삼았던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미국 측의 추가적인 양보가 없는 점을 확인한 만큼 시간적 상황을 고려할 때 사실상 목표에 도달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실장과 김 장관은 지난 16일 방미 이후 엿새 만인 22일 워싱턴DC를 재방문해 상무부 청사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만나 한미 관세 협상의 잔여 쟁점을 놓고 2시간 가량 협의를 벌였다.

앞선 협상에서 상당 부분 이견을 좁혔지만 한두 가지 남은 쟁점을 논의하기 위해 한국으로 귀국한 뒤 재차 미국을 방문한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는 29일 방한을 앞두고 이뤄진 사실상 마지막 한미 고위 당국자의 대면 협의라는 점에서 APEC을 계기로 열리는 29일 한미 정상회담이 협상 타결의 '분수령'이 될 수 있는 대좌였다.

하지만 '진전' 상황만 재확인한 채 아직도 남은 쟁점을 해소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APEC 이후에도 추가적인 협의가 계속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말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 펀드를 구성하는 것으로 구두 합의했으나, 펀드 구성방식 등을 놓고 입장이 엇갈리면서 후속 협상이 난항을 겪었다.

애초 정부는 3천500억달러 대미투자 중 현금 투자 비중을 5%, 나머지는 보증·대출로 판단했으나 미국은 미일 양해각서(MOU)를 근거로 전액 현금 선불(up front)투자를 요구했다.

이후 미국은 대규모 현금 투자가 이뤄질 경우 한국 외환시장에 큰 충격을 가할 수 있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여 선불이 아닌 분할 투자 방식을 수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전히 3천500억달러 중 상당 부분을 현금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관 장관은 20일 '미국이 여전히 전액 현금 투자를 요구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거기까지는 아니다"라고 말해 3천500억달러를 놓고 한미 간 논의에 진전이 있음을 시사했으나 입장 차는 여전한 셈이다.

정부는 1년간 대미 직접투자 금액이 150억~200억달러 수준을 결코 넘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2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외환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 1년 사이에 한은에서 외화를 조달할 수 있는 규모가 150억~200억달러"라고 밝힌 바 있다.

조달 가능한 달러를 모두 대미 투자에 사용할 수 없는 만큼, 실제로 1년에 투자 가능한 외화 규모는 이보다 훨씬 줄어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현금 투자 비중과 관련한 절충점이 생기면 현금 조달 방안도 확정할 수 있다고 본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공개된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한국은 투자 패키지의 균형 잡힌 구성, 즉 직접투자·대출·보증이 혼합된 설계를 우선시하고 있다"며 "한미는 통화 스와프보다는 투자 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3천500억달러를 장기 납부할 경우 납입 기간을 얼마로 둘지도 쟁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9년 1월까지인 자신의 임기 안에 한국의 투자금을 받아내 정치적 성과로 홍보할 것으로 보이는데, 임기 이후로 납입 기간을 늘리는 것에 동의할지 미지수다.

일본과 유럽연합(EU) 모두 트럼프 대통령 임기인 2029년까지는 투자를 완료하겠다고 약속했다.

수익배분 방식을 놓고도 이견이 엇갈린다.

미국은 일본처럼 대미 투자펀드의 투자금 회수 이후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투자 수익 배분이 '상업적 합리성'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남은 쟁점이 있는 만큼 현 상황에서 APEC을 계기로 한 최종 협상 타결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전날 공개된 미국 방송사 CNN과의 인터뷰에서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통상협상을 타결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며 예상보다 협상이 길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대통령은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결국은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우리는 동맹이고, 우리 모두 상식과 합리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오는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에 서명을 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다시 논의하는 '톱다운' 방식의 타결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톱다운 방식을 통해 협상이 담판지어질 경우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 내용을 공식화하는 이벤트가 열리거나 합의 내용을 담은 '팩트시트'(사실관계 설명자료·fact sheet)가 공개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지휘'를 받고 움직인 실무진 레벨의 협의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최종 의사결정을 위한 결단을 할 경우 정치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dy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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