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죽자고 덤벼드는 사람들은 막기가 진짜 쉽지 않다…AI(인공지능)에서도 지금의 해킹 이슈와 같은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 진짜 걷잡을 수 없을 것 같다."
지난 23일 판교에서 열린 '인공지능(AI) 산학연 전문가 간담회'를 주재한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이 한마디는 AI 보안의 현실을 직시하게 했다. 배 부총리는 2020년 LG AI연구원의 초대 원장으로 초거대 AI 모델 '엑사원(EXAONE)' 개발을 이끌었던 AI 전문가다. 이재명 정부가 AI를 국가 핵심 성장동력으로 삼고 과기정통부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시킨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취임 4개월이 지난 지금, 배 부총리가 가장 많이 시간을 쏟은 건 AI 육성 정책이 아니라 통신사 해킹 대응과 보안 문제였다. 최근 주요 통신사 해킹 사태가 잇따르면서 통신·IT 분야 보안은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다. 부총리의 발언처럼 '죽자고 덤벼드는 이들'을 막는 건 애초에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이러한 해킹이 단순 통신망이 아닌 AI와 결합한다면 상황은 두려워해야 할 수준이 될 것이다.
배 부총리는 5년 이내에 대부분의 사람이 하나씩 AI 에이전트를 갖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그 에이전트가 해킹당하고, 또 그 정보가 상호 연계·학습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는 이런 점에서 '굿 AI', 즉 '신뢰할 수 있는 착한 AI'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대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는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지나치게 느린 규제 대응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 기업들은 자체 거버넌스를 고도화하며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제도는 여전히 수개월 단위로 움직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무엇인가를 제안하기도 두려운 게 족쇄가 채워지는 순간 이를 끊으려면 또 너무 많은 회의를 거쳐야 한다"며 "이런 속도 차이로 국가의 규제 체계가 AI 시대에 부합하는지 고민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서울=연합뉴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인공지능안전연구소에서 '딥페이크 탐지, AI에이전트 안전성 평가 시연' 설명을 듣고 있다. 2025.10.23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AI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한다. 오늘 발표한 기술이 내일이면 구식이 되는 시대다. 이런 환경에서 국가가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보안체계는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논의의 밑바탕에는 AI가 국가 산업 진흥의 핵심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정부는 AI를 미래 먹거리 전략의 중심으로 삼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의 AI 투자 속도와 기술 격차에 대한 불안감도 적지 않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인증과 표준화를 서둘러 국제 협상 테이블에 올리고, 신뢰할 수 있는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국내 게임사 크래프톤의 게임ㆍ문화 플랫폼 서울 성동구 '펍지 성수'에서 AI기반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인조이'를 체험하고 있다. 옆은 김형준 인조이스튜디오 대표. 2025.10.1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xyz@yna.co.kr
같은 날 미국에서는 민간 비영리단체 '생명의 미래 연구소'가 초지능 AI의 개발을 잠정 중단하자는 성명을 발표했다. 과학적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을 때까지 개발을 유보하자는 취지다. 여기에는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전략가,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석좌교수, 영국 해리 왕자 부부,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 창업자 등 다양한 인사가 참여했다.
AI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은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됐다. 그러나 많은 정부와 기업은 '뒤처질 수 없다'는 조급함에 이 경고를 외면한다. 하지만 AI가 가져올 미래가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 누가 확신할 수 있는가. 일자리를 AI에 내주고 나서, 그 대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조차 불분명하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AI의 속도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과연 이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 맞는 것인지 판단도 쉽지 않다. 현장에서 한 AI 전문가는 AI안전연구소의 딥페이크 탐지 기술 시연을 보고 "이미 오래된 기술"이라고 말했다. 이 짧은 말 한마디가 AI에 대한 우리의 대응 속도를 보여주는 것처럼 들린 건 기자뿐이었을까. (산업부 윤영숙 차장)
ysyoon@yna.co.kr
윤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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