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스피 지수의 상승세가 무섭다. 올해 초 2,000대 초반에 머물던 코스피 지수는 급등을 이어가며 어느새 4,000을 넘어섰다. 정부와 여당은 1천400만 주식투자자의 열망을 업고 '코스피 5,000'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의 추세라면 코스피 5,000 달성도 멀지 않아 보인다.
코스피 5,000 정책은 세계 최하위 수준인 우리나라의 기업거버넌스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이라는 문제 인식과 그에 따른 개혁 필요성에서 출발했다. 지배주주와 일반주주(비지배주주, 소수주주), 경영진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것이 바람직한 기업거버넌스인데, 우리나라는 각종 방법을 통해 일반주주의 부가 지배주주에게 이전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최근 국회는 여당 주도로 일반주주의 권리 강화와 보호를 통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목표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명문화, 대기업의 집중투표제 의무 적용, 분리선출 감사위원 수 확대 등의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한국 자본시장에서 소외된 존재였던 일반주주들이 '1주 1표'라는 자본시장의 원칙에 맞게 공평한 대우를 받는 계기가 마련됐고, AI발 반도체 붐과 맞물리며 대표적 일반주주인 글로벌 기관투자자 자금이 한국 증시로 유입되어 지수 상승을 견인했다.
정책 목표가 코스피 5,000이라는 이해하기 쉬운 구호로 표현되었지만, 사실 지수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업과 증시의 펀더멘탈 대비 저평가가 해소되는 것이 핵심이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만 크게 올라서 지수 5,000을 달성한다면 문제의 근본적 개선과는 거리가 있다.
기업거버넌스의 개선은 전체 주주를 공정하게 대우한다는 자본시장 정의 확립 차원을 넘어, 경제 성장의 핵심이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주식투자자 수가 많지 않았을뿐더러, 국가와 대기업 주도의 과정에서 지배주주들이 성장의 과실을 더 많이 가져가고 일반주주들이 희생하는 것이 어느 정도 정당화되기도 했다. 일반주주들도 파이가 커지니 분배의 불공정성을 크게 체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력 산업이 성숙화되고 국가 간 경쟁이 심화된 현대에는 이러한 모델이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는 혁신과 경쟁을 통한 성장이 필수적인데, 이는 국가나 특정 대기업 위주의 성장 전략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 미국도 20세기 초까지는 카네기, 록펠러, 모건 등의 재벌 위주로 성장했지만, 재벌 독점이 경쟁과 혁신을 저해한다는 진단 하에 법원의 독점기업(트러스트) 해체 명령, 정부와 기업의 합의 등 여러 방법으로 재벌 독점이 해체됐다. 당시 미국도 재벌의 힘이 막강하던 시기에는 자본시장이 발전하지 못하고 주주권이 약했다. 가치투자의 창시자로 불리는 워런 버핏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이 노던 파이프라인의 소수주주로서 주주를 홀대하던 경영진과 싸웠던 시기도 이 시기(1926년)였다. 그러나 트러스트 해체를 통해 지배력이 분산되고 일반주주를 보호하는 여러 법적 제도가 도입되면서 미국 자본시장은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후 미국 자본시장은 수많은 혁신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자들이 이들 기업의 성장과 함께 부를 축적하는 세계 최대의 발전된 시장이 되었다.
혁신을 위한 대규모 자본 조달을 위해서는 이처럼 자본시장의 발전이 필수적이다. 자본시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자본의 순환, 즉 재배치 기능이다. 돈이 필요한 기업은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반대로 돈이 많이 쌓여 필요 없는 기업은 주주에게 돌려주어 주주가 직접 자금이 더 필요한 기업에 투자하게끔 함으로써 자본이 적재적소로 순환 재배치되게 해야 한다. 자본이 지나치게 부족하거나 과잉인 기업은 비효율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시장의 좋은 평가를 받을 수가 없다. 좋은 평가를 받아야 주가가 오르고 더 큰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며, 남는 자본은 필요한 곳으로 흘러 또 다른 성장과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 수조 원의 정책자금을 투입하는 것보다, 기업거버넌스와 자본시장 개혁을 통한 자본 창출 규모와 효과가 훨씬 클 것이다.
한국 기업거버넌스의 문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처럼 자금이 가장 필요한 곳으로, 가장 효율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배주주의 사익편취와 같은 불법적 방식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도 존재하지만, 자본 순환의 비효율성이 더 큰 문제다. 대규모 자본지출이나 투자가 필요 없는 기업에 수십 년간 자본이 쌓여 있으면 기업의 자본효율성 또는 이익률/수익성(ROE)이 떨어진다. 자본비용보다 낮은 자본수익성을 보이는 기업은 사업의 실제 가치나 자본의 현재 가치보다 낮게 평가받는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보다 낮은 기업이 이런 경우다. 이런 기업이 많을수록 시장 전체가 저평가된다. 이것이 과거 수십 년간 전 세계 증시 대비 낮은 주주환원과 PBR을 보였던 한국 증시의 모습이었다.
결국 한국 증시의 저평가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여 자본시장을 통한 혁신과 성장을 도모하려면 자본효율성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기업의 이사회와 경영진은 기업의 자본비용을 인식하고, 그보다 더 높은 장기 ROE 창출을 목표로 해야 한다. 주가는 ROE 상승의 결과일 뿐이다. 그러나 최근 코스피 지수가 4,000을 돌파했음에도, 주가가 크게 상승한 일부 대형주를 제외하면 여전히 많은 기업의 ROE는 낮고 PBR이 1배, 심한 경우 0.3~0.4배에도 미치지 못한다. 자본비용을 인식하고 ROE 목표를 제시하는 기업도 여전히 극히 드물다.
한편 일본거래소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고, 상장기업에 자본비용 인식과 ROE 개선을 통한 저평가 해소를 주문했다. PBR 1배 미만 기업은 ROE 개선 계획을 거래소에 제출하고 이를 이행해야 한다. 자본시장의 핵심 원리에 기반한 기업거버넌스 개혁 정책을 십여 년간 꾸준히 이행한 결과, 일본 증시는 구조적으로 재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코스피 5,000'이라는 구호는 눈에 잘 들어오고 누구나 이해하기 쉽다. 이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나 정치인들도 이것이 일본처럼 문제의 근본 원인을 건드리는 구호라기보다는, 이해를 돕기 위한 정치적 구호에 가깝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 어떤 정부나 국회도 하지 못했던 거버넌스 개혁 정책을 빠른 속도로 이행하고 있다.
다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서는 기업의 이사회가 자본비용을 인식하고 자본효율성 개선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집중투표제나 독립이사 비율 확대 같은 제도 개선을 통해 일반주주가 이사회에 참여하기 용이한 환경을 만드는 것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와 기업의 근본적 인식 개선 없이는 이러한 제도들이 각종 방어책에 의해 언제든 무력화될 수 있다.
이사회 스스로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교육, 특히 독립이사 중심의 개선 노력, 그리고 일본의 사례처럼 거래소 등 규제기관의 지침이 병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한 기업들 중 일부는 자본비용과 자본이익률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한 구체적 개선 계획을 밝혔고, 시장도 이에 호응하며 이들 기업의 주가가 대폭 상승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전체 상장기업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지만, 증시는 그렇지 않다. 코스피 5,000이 일부 주도주의 상승만으로 달성된다면 정책 목표가 달성된 것이 아니다. 최근 증시의 상승으로 인해 기업거버넌스 개혁의 동력을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
ywshin@yna.co.kr
신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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