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바퀴만큼이나 인류 역사상 중요한 발명품은 사다리다. 인류가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용한 도구이자, 야곱의 사다리처럼 하늘과 인간, 두 대상을 잇는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다른 의미로 요즘 사다리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사다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가'는 질문 속에서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냉소가 넘쳐난다.
"돈 모아서 집값 떨어지면 사라"는 국토교통부 1차관이 내놓은 이 한마디. 집값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메시지였지만, 33억 아파트에 사는 이가 내놓은 조언은 조롱으로 받아들여졌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이 연봉의 수십 배인데 언제 돈을 모아 집을 사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서울 아파트를 사려면 십수 년이 걸린다. 더 나은 동네로, 더 좋은 환경으로 이동하려는 인간의 심리조차 모른 채, 부동산시장이 안정되는 동안 소득이 쌓이면 어차피 기회는 돌아오게 돼 있다는 1차관의 발언은 결국 사의로 이어졌고, '부동산 책사'의 사표는 하루 만에 수리됐다. 기회의 평등, 계층 이동, 불공정을 가리키는 사다리를 자극한 '말의 무게'가 다시 확인됐다.
1차관의 말은 도화선이 됐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토지거래허가구역과 대출 규제라는 이름으로 기회의 사다리를 끊어버렸다는 국민적 분노를 자극했다. 상급지로의 진입 문턱은 높아졌다.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의 선 긋기, 갈라치기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EBS는 지난달 '다큐프라임-계층 사다리는 끊어졌나'를 방영했다. 각종 통계분석과 현장의 증언을 토대로 대한민국에서 갈수록 심화하는 교육격차와 사교육 과열의 민낯을 파헤쳤다. 익숙한 얘기를 다시 끄집어냈는데, 계층 사다리가 무너져 간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역별 비례선발제도'를 제안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직접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도 눈에 띈다. 지역별 비례선발제도는 서울 주요 대학의 입학정원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에 따라 할당하자는 것인데 '서울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SKY+의대 신입생 중 소득 최상위권이 80% 이상이고, 돈 낸 사람만 기회를 부여받는 현실에 대해 이창용 총재는 마치 이것이 가장 공정하고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모두가 불행하다. 지금 행복한 사람이 없는 이유가 부동산과 교육"이라고 꼬집었다. 부동산과 교육은 대표적인 계층 사다리였다. 부동산 재테크를 통해, 좋은 학교 진학을 통해 더 높은 계층으로 올라가겠다는 부푼 희망이 있었다. 학군지의 집값이 비싼 게 당연한 현실이고, 좋은 지역에 사는 게 자녀 교육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강한 정책 수단과 역량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경고등이 켜진 비생산적인 투기 수요를 철저하게 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각 부처는 국민 경제를 왜곡하는 투기 차단에 총력 기울여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연일 사상 최고치를 써가고 있는 코스피에 대해서 "주식시장이 정상화 흐름을 타고 있다"고 평가했다.
부동산을 누르고 주가를 부양하겠다는, 국민의 자산증식 수단이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이재명 정부의 한결같은 메시지다.
'박스피'라는 오명 속에서 영원히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코스피 4,000시대가 열렸다. '4천피' 시대를 열 수 있는 토대가 됐던 이전 정부의 밸류업 당시 "증시는 국민과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상생의 장'이자, 국민의 자산 축적을 지원하는 '기회의 사다리'다. 계층의 고착화를 막고 사회의 역동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금융투자 분야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했다.
자산 증식 사다리가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옮겨와야 한다는 건 정권을 막론하고 시대의 외침이다. 코스피 4,000시대에도 성공 경험이 많지 않은 주식은 사다리로서 불패 신화 부동산을 아직은 이기기가 쉽지 않다. 주식으로 번 돈이 결국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갈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부동산이든 교육이든, 주식이든, 사다리는 언제나 위를 향해 있지만 그 방향이 희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미 정상에 닿은 누군가를 향해 사다리를 걷어찼다고 비난해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사다리가 끊어졌다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자식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한 사다리를 쥐여주려 한다. 위를 향한, 더 나은 쪽을 향한 사다리의 욕망은 멈추지 않는다. (증권부장)
sykwak@yna.co.kr
곽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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