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었던 10월의 어느 날 초저녁,
미국 워싱턴DC 중심가 듀퐁서클에 위치한 한 한식당의 뒤편에는 뜨끈한 수육 접시와 소주잔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그 자리에는 한미 관세 협상의 막판 쟁점을 놓고 맞붙은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그리고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함께 있었다.
워싱턴DC 상무부 청사에서의 공식 협상 테이블이 몇 시간째 공전했던 그날, 우리 협상단은 러트닉 장관을 비공식 만찬에 초대했다.
실무진들이 고심 끝에 정한 한식당이었다.
회의실의 차가운 조명 대신 따뜻한 국물 냄새와 북적이는 사람들의 온기가 감도는 한식당은 우리만의 'K-네고시에이션 밀(negotiation meal)'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러트닉 장관도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소주잔이 몇 차례 오가자 사뭇 공기가 달라졌다.
그 순간 서류와 계산기가 아닌 사람의 온도가 협상의 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상무부 청사에서는 숫자와 상세 조항을 두고 날카롭게 맞섰지만, 이 자리에서만큼은 상대의 마음을 얻는 기술이 통했다.
냉철한 줄로만 알았던 러트닉 장관도 꽤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협상단은 회고했다.
'워싱턴 회담'은 지난 8월 뉴욕에서만큼이나 뜨거웠다.
한 두가지 쟁점을 두고 때론 고성이, 때론 농담이 오가며 물밑에서 치열한 논리 싸움이 이어진 탓에 짧은 시간에도 천국과 지옥을 오가기 일쑤였다고 한다.
양국 협상단 모두, 모든 것을 쏟아내고 나서 찾은 한식당에서의 만찬은 서로의 언어를 배운 밤으로 기억됐다.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얼마 안 남기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 우리 협상단의 절실함은 어느 때보다도 컸다고 한다.
시간에 쫓겨 국익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 반대편에는 그만큼 합의에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도 적지 않았다.
러트닉 장관과 우리 협상단은 '다음엔 폭탄주'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공식 문서 어디에도 없는 외교의 한 장면이 그날의 듀퐁서클 한식당에 있었다.
한미 양국은 지난달 30일 경주 APEC을 계기로 만난 정상회담에서 극적으로 관세 협상에 합의했다.
워싱턴에서 함께 나눴던 수육과 소주 몇 잔이 협상의 물꼬를 트는 매개가 됐다.
(서울=연합뉴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과 한미 관세협상 현안 관련 면담을 하고 있다. 2025.10.19 [산업통상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phot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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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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