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상법에 도입되고 법적 구제 수단이 정비된다 하더라도 정작 막대한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고 소송을 제기할 주체가 부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12일 한국증권학회와 고려대학교 기업지배구조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열린 공동 심포지엄에서는 근본적으로 주주 대표 소송이 경제적 인센티브가 부족해 집단행동의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일훈 일본 증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대표 소송은 주주에게 이익이 안 되기 때문에 누군가의 행동에 무임승차하는 것이 (경제학적으로)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손해배상금은 회사에 귀속돼 주주가 얻는 간접적 이익은 불확실한 반면 패소 시 비용은 모두 부담해야 한다.
고 위원은 일본의 경우 "과거 시민단체가 소송을 주도했지만 이들이 고령화되고 해체하면서 소송 건수가 줄고 있다"며 시민단체 중심 모델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대안으로는 소송 주체에게 경제적 인센티브를 부여하거나 공적 주체가 나서는 방안을 제시했다.
고 위원은 "승소 가능성을 전문적으로 판단하고 소송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하다"며 변호사의 완전 성공 보수를 허용하거나 제3자 소송 자금 제공업자를 활성화하는 모델을 제안했다.
이는 주주 개인이 져야 할 막대한 소송 비용과 패소 위험을 전문 변호사나 자금 제공업자가 대신 부담하는 구조다. 이들은 승소 가능성을 전문적으로 판단해 이길 수 있는 소송에 자금을 투입하므로, 남용적 소송은 자연히 걸러지고 주주들의 '집단행동 딜레마'도 해결될 수 있다.
이와 함께 대만의 투자자 보호 센터와 같은 공적 기관도 언급했다.
고 위원은 "세 가지 주체(변호사, 펀더, 공적 기관)가 모두 시장에서 활동하며 가격을 두고 경쟁하는 구조가 돼야 소송 비용이 안정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만 모델을 벤치마킹할 수 있겠으나 정부 입김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큰손'인 국민연금을 둘러싼 딜레마도 부각됐다.
노종화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대표 소송을 언제 할 수 있을지, 파급효과가 클 텐데도 (실행 의지에 대한) 믿음이 없다"며 국민연금의 소극적 태도를 지적했다. 그는 "차라리 (국민연금이 직접 나서는 것보다) 대만 공적기구 모델이 현실적이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다만 고 위원은 일본에서 연기금의 대표 소송이 과연 수탁자에게 이익이 되는가에 대한 부정적 논의도 있다며 소송의 정당성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원종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장은 "과거 (대표 소송 기준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실제 소송을 하지는 못했지만 '국민연금이 나선다는 소문'만으로도 기업들의 손실금이 상당히 회수됐었다는 말을 사후적으로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연금의 역할은)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어떻게 비춰줄 것인지"라고 덧붙였다.
이창환 얼라인 파트너스 대표는 행동주의 펀드가 소송에 나서기 힘든 구조적 문제를 토로했다.
이 대표는 "의미 있는 지분을 보유한 기관 투자자가 소송을 하는 것이 가장 시장 친화적"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소송에서 지면 돈은 물론 평판의 문제가 크며 이기더라도 그 이익이 회사로 귀속된다.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구조에선 결국 그 돈이 다시 지배주주에게 돌아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kslee2@yna.co.kr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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