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펀드매니저라기보다는 풋내기 투자자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청년 둘이 있었다. 제이미와 찰리. 직전까지 엄마에게 얹혀살며 타박받기 일쑤였던 이들은 '가능성은 작지만, 터지면 대박이 나는' 옵션 투자로 초기 투자자금 11만달러를 3천만달러로 불린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식이었지만, 젊은 혈기는 '외가격' 투자에 눈을 뜬다.
브라운필드펀드라는 이름도 없는 펀드의 매니저로 자신들을 소개한 제이미와 찰리는 스와프딜러의 세계적 협의체인 ISDA에 들어가려고 JP모건체이스에 찾아갔다가 보기 좋게 굴욕만 당하고 나온다. 사람들이 잘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는데 특별한 재능이 있던 이들은 쫓겨 나오다가 JP모건체이스 로비에서 우연히 미국 주택시장이 무너지기 때문에 공매도해야 한다는 투자설명서를 주워 들고는 알아챈다.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그 투자설명서는 주택시장 붕괴를 가장 먼저 감지한 한쪽 눈이 의안인 의사 출신 펀드매니저가 작성한 것이었다. 그는 바로 2025년 버블과 공매도, 수익 부풀리기라는 화두를 던져 다시 시장의 중심에 선 마이클 버리다.
2016년 영화로도 나온 '빅쇼트(Big Short)'은 실존 인물을 소재로 했다. '괴짜라고 쓰고 천재라고 읽는' 4팀 중 한명이 마이클 버리다. 이야기는 제이미와 찰리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빅쇼트의 출발점과 종착점은 버리다.
헤지펀드를 운영하는 버리는 미국 모기지에 공매도할 보험이나 옵션이 없어 투자은행에 가서 스와프라는 상품을 만들어 냈다. 이어 최고 등급 수준인 'AAA급'을 받던 주택담보대출 형태의 모기지 채권이 부실해질 상황에 대비해 증권사들과 채권가격이 내려갈 때 돈을 버는 신용부도스와프(CDS) 계약을 체결한다. 버리의 투자 소문을 들은 도이체방크의 트레이더는 채권 공매도 상품을 개발해 모건스탠리 산하 펀드팀의 투자를 받고, 찰리와 제이미도 은퇴한 트레이더의 도움을 받아 모기지 채권 공매도 투자를 했다.
위기가 현실이 되자 이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번다. '괴짜 투자자' 마이클 버리는 월가라는 제도권은 물론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넌 지금 미국경제가 무너진다는 것에 돈을 걸었어. 미국 경제가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수많은 사람이 집을 잃고 퇴직금을 잃고 직장을 잃어. 춤은 추지 마." 영화의 한 대사처럼, 빅쇼트는 나라의 경제 위기를 이용해 돈을 벌었던 에피소드를 조명했다. 대마불사를 깨뜨린 리먼브러더스의 몰락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또렷이 기억되는 만큼, 약 10년 지나 나왔어도 영화는 꽤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도 쏠림과 탐욕을 역으로 이용한 투자하면 빅쇼트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런 마이클 버리가 인공지능(AI) 랠리 과열을 경고하며 팔란티어와 엔비디아의 하락에 베팅했다. 최근 공개된 SEC 제출 서류에 따르면 버리의 사이언 자산운용은 엔비디아와 팔란티어 풋옵션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로 치면 3분기 말 보유 종목을 공개한 것이어서 지금 포지션이 바뀌었을지 알 수 없지만, 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버리는 또 X 계정에 자신을 연기했던 배우 크리스천 베일이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는 영화 빅쇼트 스틸컷과 함께 "때로는 거품이 보인다. 때로는 그것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때로는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게임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썼다. 2023년 4월 이후 처음으로 침묵을 깼다.
이어 지난 10일에는 "자산의 내용연수(유효수명)를 인위적으로 연장해 감가상각비를 축소하는 것은 현대 회계에서 가장 흔한 사기(fraud) 수법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아마존, MS, 알파벳, 메타플랫폼스 등 하이퍼스케일러들이 AI 반도체와 서버 내용연수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연간 감가상각비용을 줄여 수익을 부풀리고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버블이라면 가장 먼저 알아차릴 것 같은 버리의 판단, 그것도 지금까지 미국은 물론 전세계 증시를 이끌어온 AI 주도주 하락 베팅에 미국 기술주들은 급락세로 돌변했다. 이후 반발, 저가 매수에 급등하면서 낙폭을 많이 회복했지만 버리가 던진 AI 거품론은 지금도 시장을 자극하고 있다.
버리의 계정 프로필인 '제약받지 않는 카산드라'(Cassandra Unchained)의 예언이 다시 한번 실현될지도 관심이다. 카산드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의 딸이다. 태양신 아폴론이 환심을 사기 위해 예언 능력을 주고 구애했지만,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자 아폴론은 아무도 카산드라의 예언을 믿지 않도록 저주를 걸었다.
테슬라 주가의 고공행진에 백기를 들기도 하는 등 마이클 버리가 모두 맞았던 것은 아니다. 2008년 딱 한 번 맞았을 뿐이라는 꼬리표도 버리에게는 따라붙는다. 그런데도 버리가 시장의 중심에 선 건, '4천피'는 물론 전세계 주요 주가지수가 미증유를 걷고, 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유포리아에 빠져있던 지금, 모두가 "예" 할 때 손을 들고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던 때였기 때문이다.
위기는 늘 버블의 한가운데서 자라고, 카산드라의 예언을 믿지 않았던 트로이처럼 시장도 늘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진짜 위험은 그 낙관을 의심하지 않는 순간에 태어난다. (증권부장)
sykwak@yna.co.kr
곽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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