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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삼양식품과 코카콜라

2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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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한국 증시에서 장기 투자는 으레 필패로 통한다. 태생적 산업 구조의 한계 탓이다. 시가총액 상단을 점령한 메모리 반도체와 완성차뿐만 아니라 석유화학, 철강 등은 모두 사이클을 탄다. 호황의 정점에서 뛰어든 개미들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황의 골짜기에서 피눈물을 흘린다.

이런 척박한 토양에서도 아름다운 우상향 그래프를 그려낸 성장주들이 있다. 리쥬란으로 피부미용 의료기기 시장을 개척한 파마리서치와 불닭 신화로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도약한 삼양식품이 대표적이다. 두 기업은 최근 수년간 폭발적인 주가 상승을 기록하며 국내 증시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삼양식품은 엔비디아보다 가파른 상승에 '면비디아'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또 하나의 공통점으로 투자자들을 울게 했다. 상장사이면서도 주주를 경시하는, 한국 시장의 고질적인 '거버넌스 리스크'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파마리서치는 최근 지배력 강화와 홀딩스 디스카운트를 위한 인적분할을 시도했다가 주주의 거센 반발에 철회했고, 삼양식품은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로 자사주를 시장에 내다 팔았다.

특히 삼양식품의 자사주 매각은 그 해명 과정에서 주주를 두 번 울렸다. 회사는 "재무구조는 건전하지만 글로벌 수요 대응을 위한 선제적 조치"라며 "단순한 현금 마련 목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중국 생산라인 증설에 따른 투자금 변경액은 기존 2천14억 원에서 2천72억 원으로, 늘어난 금액은 고작 58억 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난 9월 싱가포르 법인을 통해 중국 법인 자본금 출자는 이미 완료됐다.

회사의 주장대로 "재무가 건전하고 돈이 급하지 않다"면 왜 굳이 할인율(3.5%)까지 적용해가며 '블록딜'이라는 급매 형식을 택했을까. 정말 여유 있는 상황이라면 보유 현금을 사용하는 것이 우선이다. 자사주를 활용하려 했다면 할인할 필요도 없고 시장에 당장 주식이 풀리지 않는 교환사채(EB)를 발행하는 것이 더 우월한 선택이다.

회사 측은 이번 매각 물량이 발행주식 총수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며 그 의미를 축소하려 든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본질을 비켜 간 해명이다. 충분한 잉여현금을 두고도 굳이 '주가 안정을 위해 취득한' 주식을 내다 팔며 이를 성장 재원으로 포장한 기만적인 태도가 문제다. 거버넌스포럼의 지적대로, 자사주를 경영진의 쌈짓돈처럼 여기는 나쁜 선례를 남기는 꼴이다.

시장의 우려는 더 먼 곳에 향해 있다. 불닭의 침투율이 높아지고 성장이 둔화하면 삼양식품도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고성장주에서 꾸준한 현금을 창출하는 가치주로 변할 수밖에 없다. 그때 기업 가치를 결정짓는 건 쌓이는 현금을 주주를 위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 자본 배분 능력이다. 성장 가도를 달리는 지금도 주주와의 약속을 이토록 가볍게 여기는데, 훗날 진정한 자본 배분 능력이 요구되는 시점이 오면 과연 달라질까.

제대로 된 자본 배분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미국의 텔레다인 사례를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재임 기간 주당 가치를 180배(180%가 아니다) 올린 전설적인 경영자 헨리 싱글턴은 주가가 저평가될 때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고 고평가될 때 증자를 단행하며 자본 효율의 극치를 보여줬다. 유상증자와 실질이 같은 자사주 매각은 주가가 지나치게 비쌀 때나 고려할 수 있는 카드다. 지금 경영진은 삼양식품의 주가가 고점이라 판단한 것인가.

무엇보다 삼양식품은 과거 자본시장의 수혜를 톡톡히 누린 기업이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부도 위기는 채권단의 출자전환이라는 자본시장의 구명조끼 덕에 넘길 수 있었다. 오너 3세 전병우 전무가 중학생 시절 신주인수권을 저가에 확보해 수십억 원의 차익을 낸 것 역시, 그것이 편법적이었다는 비판은 차치하고서라도, 자본시장이 깔아준 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정수 부회장은 "불닭볶음면을 코카콜라처럼 만들겠다"고 공언해 왔다. 제품은 이미 그 궤도에 올랐을지 모르나, 이사회의 인식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코카콜라가 위대한 기업으로 남은 건 단순히 설탕물이 중독적이어서가 아니다. 워런 버핏이 극찬한 로베르토 고이주에타 코카콜라 전(前) 회장의 탁월한 자본 배치와 주주 환원 정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의 코카콜라가 탄생하려면 '불닭'이라는 걸출한 제품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필요한 건 '삼양식품의 고이주에타'다. 김 부회장이 단순히 많이 팔리는 라면을 만든 경영자를 넘어, 자본시장에서도 박수받는 전설로 기록되기를 희망한다. (증권부 이규선 기자)

ks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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