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아들이 해군 장교로 임관했다는 소식이 언론에 도배됐다.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군대에 갔다"는 점에서 칭찬이 쏟아졌고, 댓글난은 '멋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글들로 채워졌다.
그동안 재벌·정치인·연예인의 병역 회피 논란이 이어졌던 것을 떠올리면 '신선한 충격'일 수 있다. 그러나 군 복무는 대한민국 청년에게 주어진 보편적인 의무이며, 한국에서 사업하고 이익을 내는 삼성가의 아들이 한국 국적을 선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비록 복수 국적을 선택할 여지가 있었다고 해도 말이다.
얼마 전 국회에서는 미국 국적자 김범석 쿠팡 Inc. 이사회 의장을 두고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에서 막대한 매출을 올리면서도, 정작 사안이 터질 때마다 '해외 체류'를 이유로 책임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이 장면을 보면 이재용 회장의 아들이 국적 선택 문제에서만큼은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재용 회장은 2020년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해 세습 경영을 끝내겠다고 못 박은 바 있다. 다만 이는 선언적 발언일 뿐 실제 지배구조의 문제는 여전히 삼성에 남아 있다.
복잡한 순환출자구조, 지배지분의 상속 가능성, 그리고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실질적 전환이 미흡하다는 점은 여전히 논란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그룹전략을 총괄하는 사업지원TF를 '사업지원실'로 격상한 것도 세간의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재용 회장 아들의 군대 입대가 단순한 '재벌 4세의 군 복무'가 아니라 일종의 스타 콘텐츠처럼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벌가 인사들이 행사장에서 착용한 코트와 선글라스가 화제가 되고 품절까지 이어졌다는 보도는 재벌가의 일상 자체가 하나의 문화 콘텐츠처럼 소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 지인은 "요즘 젊은 세대는 삼성·현대·CJ를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인식하며 자랐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재벌은 과거처럼 '부의 세습구조'의 상징이 아니라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는 스타 기업에 가깝다. 금수저 비판보다 '왜 나는 금수저가 아니었을까'로 자책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경쟁 속에서 대기업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 일자리, 투자, 기술력 등에 더 큰 의미를 두는 세대가 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주가가 급등하자 평소 삼성에 비판적이던 이들까지 다시 "삼성 신봉자"로 돌아서는 현상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재벌을 향해 복합적인 감정을 품어왔다. 성장의 주역이었지만 동시에 특혜·승계·지배구조 문제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달라졌다. 경기 둔화, 고금리, 미래 불안, 청년층의 경제 불안정 등으로 대기업의 '부정'보다 '기여'가 더 크게 인식되는 시대가 됐다.
삼성이 벌어오는 외화와 기술력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정서가 확산하면서, 또 다시 재벌은 '국가 경제 수호자'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재용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회장과의 치맥 회동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보다 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번 이재용 아들의 국적 선택과 군 복무에 대한 과도한 열광도 이런 정서 변화의 연장선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특정 기업군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굳어질수록, 그 기업의 사적 선택과 상징적 장면이 '국가적 의미'로 과대 해석될 수 있다. 특히나 재벌의 개인적 의사결정에 과도하게 흥분하는 현상은 건강한 판단을 어렵게 한다. 나아가 그 피해가 국가 경제 전체로 돌아올 수도 있다. (산업부 차장)
(창원=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28일 경남 창원시 해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열린 제139기 해군·병대 사관후보생 수료 및 임관식에서 강동길 해군참모총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제병지휘를 맡은 해군 대표 이지호 임관장교에게 계급장을 수여한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5.11.28 [공동취재] image@yna.co.kr
ysyoon@yna.co.kr
윤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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