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중심 논의에서 '정책 논의'로 전환 필요
정치·사회·산업·노동·복지 관점의 논의 시작해야
(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지금부터 10년 뒤, 2035년에 닥칠 우리의 미래에 우리는 얼마나 준비가 돼 있을까.
지난 4일 서울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제5회 디지털대전환 메가트렌드 컨퍼런스'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과정 중 하나였다.
지금 한국 사회의 인공지능(AI) 논의는 유난히 기술 중심이다.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 데이터센터 구축, 소버린 AI 전략, 기업의 AI 전환 속도….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도 논의의 핵심은 삼성·SK·네이버·카카오의 GPU 투자와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에 집중됐다.
AI 패권 경쟁에서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당위는 'AI 3대 강국'이라는 목표를 서둘러 제시하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AI를 통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 어떤 제도를 설계할 것인지,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위험을 떠안게 되는지에 대한 토론은 여전히 빈약하다.
[촬영: 윤영숙 기자]
◇ 기술 전환이 아닌 사회 대변혁…'보편적 AI' 환경 필요
올해 콘퍼런스의 다양한 발제는 이러한 공백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자리였다.
발제자로 나선 정보통신정책학회의 송지희 서울시립대 교수는 AI 전환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조직의 신뢰 구조라고 강조했다. 구성원이 참여하고 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전환이 없다면 AI는 혁신이 아니라 구조적 긴장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AI의 빠른 발전 속도에 우리는 막연히 일자리가 소멸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실제 AI로 광고 콘텐츠는 물론 영화를 만들고 코딩을 몇 분 만에 처리할 수 있게 됐고, 판례를 쉽게 찾아내고, 통번역도 거뜬히 해낼 수 있게 됐다.
한국사회학회 회장인 임운택 계명대 교수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5%가 조직 내에서 AI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ICT 산업에서는 78%가 AI를 일상적으로 사용했고, 이는 ICT> 제조> 미디어> 의료 순으로 사용 비율이 높았다. 그러나 AI 활용이 높은 산업일수록 업무 효율성과 만족도는 높았지만, 직무 대체 가능성에 대한 불안 역시 함께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장재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사람은 더 높은 임금과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노동자들은 일자리 감소와 임금 하락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자산시장의 접근성 격차까지 더해지면 임금, 자산 시장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AI가 고숙련자에게 기회를 몰아주고 중·저숙련 직군을 대체하는 메커니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 혜택을 특정 계층에 집중되지 않도록 하고 전 계층의 생산성을 높이는 '보편적 AI 환경'을 조성한다면 재분배정책과 고성장이 공존할 수 있다고 장 부연구위원은 주장했다. 이는 AI가 노동과 임금 구조를 재편하는 방식이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정책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촬영: 윤영숙 기자]
◇ "누구를 위한 AI인가" 질문 실종…정치·사회·복지 관점 접근해야
정치·사회적 차원에서도 같은 경고가 이어졌다. 한국정치학회 유성진 이화여대 교수는 알고리즘 기반 민주주의가 정보 접근성과 참여를 늘릴 수 있지만, 조작·양극화·극단화도 동시에 심화시킨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층적인 시민참여 정치 체계인 폴리아키 개념을 이용, 디지털 폴리아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즉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경쟁이 민주적이며 제도가 신뢰할만하고 통제 가능하다면 AI를 통한 조작이나 극단화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AI가 모든 서비스의 기본 인터페이스가 될 때, 기술 접근이 어려운 계층은 사회적 고립을 겪고 공공서비스 접근권도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더 빨리 AI를 도입하자'는 기술 중심 논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복지·권리의 관점에서도 정책적 비전이 요구됐다. 한국행정학회의 윤건 한신대 교수는 복지 현장에서 AI를 비용 절감 도구로만 바라볼 경우 돌봄과 인간 존엄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인간 중심 설계의 원칙을 정책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휘홍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부연구위원도 AI와 인간의 관계 자체가 새로운 권리·책임의 구조를 낳을 것이라며, 새로운 사고방식에 기초한 권리·책임의 주체를 재설계하여 기술 현실과 법질서의 공진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산업 전략에서도 반도체·데이터센터·연구 인프라 같은 기술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그 목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국가의 산업 혁신 구조 재편에 있어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정보과학회의 송길태 부산대 교수는 기술, 산업, 정책을 함께 정렬하는 국가 차원의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AI, 나아가 AGI(범용 인공지능) 시대를 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동안 정책 당국이나 기업들의 AI 논의는 "어떻게 빠르게 할 것인가"만 묻고 "왜 해야 하는가, 누구를 위한 AI인가"라는 질문은 실종됐다고 꼬집었다.
GPU·투자·속도 경쟁만으로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질 수 없으며, 정책적 청사진 없이 기술만 확장되면 AI가 불평등·양극화·정치적 취약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경고였다.
ysyoon@yna.co.kr
윤영숙
ys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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