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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지금] 베선트가 연은 총재 지역색을 건드린 속내

2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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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연합인포맥스) 최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미국 연방준비은행 총재의 자격 요건으로 '지역 거주 요건'을 들고나오면서 월가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베선트는 지난 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가 개최한 딜북 행사에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과 이사회는 "지역 연은 이사회가 누구를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최종 권한을 가지고 있다"며 "나는 누군가 그 지역에 3년을 살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들을 거부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베선트는 지역 연은은 원래 그들의 지역 출신이어야 했다며 "소급 적용하진 않겠지만 지역 연은 총재는 해당 지역에 최소 3년간 거주했어야 한다는 규정을 도입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고 밝혔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베선트가 거주 요건을 들고나온 것을 두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공연히 연준을 압박하고 자기 사람을 심으려 했던 만큼 지역 거주 요건 또한 같은 맥락에서 파악하려는 게 월가의 기본적 시선이다.

베선트가 하필 이 시점에 움직인 것은 연은 총재의 임기 만료가 임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12개 지역 연은 총재의 잔여 임기는 2026년 2월 28일 동시에 만료된다. 연준은 연은 총재들의 임기가 1 또는 6으로 끝나는 연도의 2월 말에 종료되도록 설계했다.

이는 연은 총재 자리가 도중에 교체되더라도 그대로 적용된다. 제임스 불러드 전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가 2023년 7월 퇴임하고 알베르토 무살렘 총재가 뒤를 이었지만 임기는 예외 없이 내년 2월에 만료된다.

지금까지는 '자동에 가깝게' 재임되는 게 관례였다. 개인적 사유나 비위가 아닌 이상 통상 10년 이상 재임했거나 65세 의무 퇴임 규정에 따라 사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로버트 카플란 전 댈러스 연은 총재나 에릭 로젠그렌 전 보스턴 연은 총재는 주식거래 논란으로 조기 사임한 경우다.

다만 연은 총재가 재임하려면 지역 연은 이사회가 결정한 뒤 연준 이사회가 최종 승인하는 두 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트럼프와 베선트가 지역 연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리는 부분이 바로 이 연결고리로 해석된다.

미국 대통령은 연은 총재를 직접 '임면'할 수는 없다. 대신 트럼프는 자기 사람으로 채우고 있는 연준 이사회를 통해 연은 이사회에서 올라온 재임명안을 거부할 수 있게 된다.

트럼프의 측근인 케빈 해싯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NEC) 위원장이 시장 관측대로 차기 의장에 선임된 후 또 다른 측근인 스티븐 마이런 연준 이사와 분위기를 몰아가면 다른 연준 이사들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의장석에 대한 욕심으로 트럼프와 잠시 코드를 맞추는 것뿐이라 쳐도 트럼프가 임명했던 미셸 보먼 연준 부의장은 트럼프와 보조를 맞출 가능성이 더 크다.

트럼프 행정부가 3년 지역 거주 요건을 내세운 만큼 이를 근거로 연준 이사회는 연은 총재 연임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연임이 위태로운 인사는 로리 로건 댈러스 연은 총재와 베스 해맥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 알베르토 무살렘 총재 등이 꼽힌다. 베선트는 "12명의 지역 연은 총재 중 3명이 뉴욕 출신 엘리트이고 자기 지역을 대표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 3명을 가리킨다는 게 시장의 해석이다.

로건은 2022년 부임 전까지 뉴욕 연은에서 공개시장운영을 책임졌고 해맥은 2024년 취임 전까지 뉴욕 골드만삭스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다. 무살렘은 2024년 부임 전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뉴욕 연준 부총재로 근무한 바 있다.

특히 이 세 명의 총재는 현재 금리인하를 강하게 반대한다는 점에서 트럼프에겐 눈엣가시다. 이들은 모두 공개적으로 12월 금리인하를 반대하고 있다. 게다가 해맥과 로건은 내년에 FOMC 투표권을 갖게 된다.

비단 이 3명만 트럼프의 '사정권'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애나 폴슨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도 해당 지역과 인연이 없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은 총재도 취임 전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였고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는 그 전에 캘리포니아 주지자 선거에 출마했다. 지역 거주 잣대를 들이밀면 12개 지역 연은 총재 중 절반 이상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베선트가 지역 거주 요건을 "소급적용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실제론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소급 적용하려면 대통령 행정명령으론 불가능하며 법제화가 필요하다. 연방준비법을 개정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연준법을 개정하려면 외부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의회를 설득하기도 쉽지 않다. 시간도 오래 걸려 트럼프 입장에선 금리인하의 '골든타임'이 지나갈 위험이 크다. 그럴 바엔 내년 2월 재임명을 앞두고 길목에 차단기를 설치하는 게 여러모로 쉽고도 남는 장사다.

지역 거주 요건이라는 잣대에 지역 연은 이사회가 미온적이면 트럼프 행정부로선 또 다른 수단도 있다.

각 연은 이사회는 클래스A(지역 은행가)와 클래스B(지역 상공인 대표), 클래스C(공익 대표) 이사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연은 총재 임명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클래스B 이사와 클래스C 이사인데 클래스C 이사를 연준 이사회가 뽑는다.

지역 연은 이사회가 연준 이사회의 방침에 따르지 않을 경우 클래스C 이사는 해임 압박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3년 지역 거주'라는 간단한 요건의 배경에는 이처럼 촘촘한 셈법이 깔려 있는 것이다. (진정호 뉴욕특파원)

jhjin@yna.co.kr

진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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