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연말이 오긴 왔나 보다. 이곳저곳에서 기업들의 기부 소식이 들린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A기업 40억 기탁, B기업 직원들의 취약계층 나눔 활동, C기업의 도서기부 챌린지를 통한 아동복지시설 지원, D기업 임직원 바자회 수익 기부….
연말이면 반복되는 장면이지만, 기부의 목록이 길어질수록 역설적으로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저 도움으로 누군가의 삶은 실제로 얼마나 달라질까? 그리고 얼마나 오래 유지될까?' 대부분의 기부는 순간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삶의 기반을 바꾸는 데까지 닿기란 쉽지 않다.
[출처: 삼성전자]
그러던 중에 시선을 멈추게 한 기부방식이 있다. 단순히 물품을 주거나 일시적 후원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다시 사회에 설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해주는 접근이다. 바로 삼성의 '희망디딤돌'이다.
이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포이어(Foyer)형 모델을 민간기업이 주도적으로 구축한 거의 유일한 사례다. 포이어는 사전상으로는 '현관'이라는 의미로 청년이 사회로 나가기 전에 잠시 머물며 준비하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
포이어 모델은 1990년대 영국·프랑스·호주 등에서 보호 종료 청년·홈리스 청년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기부의 한 방식이다. 이는 주거, 교육, 직업훈련, 멘토링, 심리 정서 지원 등을 통합 제공하는 방식으로 청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기술'부터 '사회적 네트워크', '경제적 자립 역량'을 모두 길러주는 일종의 삶 전환 플랫폼이다.
[출처: 삼성전자]
삼성의 희망디딤돌은 이 모델을 거의 그대로 국내에 적용한 사례다. 희망디딤돌은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기부한 금액으로 시작된 삼성의 대표적인 사회공헌활동이다. 삼성은 2015년을 시작으로 10년간 전국에 16개 희망디딤돌 센터를 구축하고, 5만4천명이 넘는 보호 종료 청년에게 주거는 물론 취업 교육을 지원해 경제적 자립을 도왔다.
2023년 시작한 '희망디딤돌 2.0'에서는 IT·반도체·중장비·제과 등 전문 직무교육까지 확장하며 자립률 47.3%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는 단순 기부로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 이는 기부의 양이 아니라 기부의 '구조'가 바뀌었을 때만 가능한 결과다.
한국에서는 포이어형 모델이 드물지만, 해외에서는 이러한 통합형 형태의 기부 방식을 적극 도입해 왔다.
영국에서는 청년들의 주거시설 개선, 금융교육, 직업훈련, 장기 멘토링 등을 지원하는 포이어연맹이라는 단체가 있으며, 호주에서도 노숙 청소년의 자립을 지원하는 유스 포이어 등과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 미국 서부에는 빈곤청년 지원 비영리단체가 주거와 직업훈련, 심리상담까지 지원하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 프로그램이 있다. 여기에 구글 등과 같은 기업이 파트너사로 참여한다.
[출처: 삼성전자]
이러한 방식의 기부는 단발적 기부보다 기부를 사회적 투자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기부가 '이미지를 위한 시혜'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개입'이 되는 셈이다.
한국은 보호종료아동 정책이 오랫동안 '정착금 지급' 중심이었고, 주거·정서·취업을 아우르는 통합지원 체계는 부족했다. 기업의 기부도 물품·현금 중심이 대부분이었고,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구조 개입형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은 활발하지 않았다. 즉, 제도·기업문화·사회 인식 모두가 포이어 방식이 자리 잡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희망디딤돌의 의미가 커진다. 특히 정부나 비영리단체만이 아니라 기업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말이 되면 기업의 기부 소식이 쏟아진다. 기부문화 확산이라는 측면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발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 기부는 무엇을 바꿨는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 누군가의 삶을 구조적으로 바꾸는가?"로 말이다.
희망디딤돌은 그 질문에 하나의 답을 보여준다. 준비된 청년들이 다시 누군가의 '디딤돌'이 되는 선순환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기부는 액수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람이 살아갈 기반을 만드는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 삼성이 시작한 변화는 한국에서도 포이어 방식이 확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제 "얼마나 기부했는가"보다 "어떻게 기부할 것인가"를 더 깊게 물어야 할 때다. (산업부 윤영숙 차장)
ysyoon@yna.co.kr
윤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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