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채권을 위한 나라는 없다"
끝없이 밀리는(금리 상승) 약세장에 기진맥진한 채권딜러들이 토로하던 말이다. 금리인하기 종료 가능성을 시사한 한국은행의 행보와 증권사들의 연이은 손절을 보면 그 정도 인식이 과도하다고 위로를 건네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금리의 큰 방향을 형성하는 펀더멘털이 그쪽을 향하는 듯하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성장률이 높아지고 환율은 고공행진을 지속한다.
상가마다 공실이 늘고 체감경기는 좋지 않다고 항변할 수 있지만, 내수 지표 또한 최악을 지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증시와 주택시장 등 위험자산의 강세 분위기가 꺾이지 않는 점도 이러한 주장에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채권시장이 기댈 곳은 불확실성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유례없을 정도란 사실은 향후 추이도 예측이 어렵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AI) 투자 열풍 자체가 흔들린다면 과잉 자본 집중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이를 토대로 한 전망도 달라질 여지가 있다.
다만 하방보다는 상방 위험이 더 높게 평가되는 분위기다. 한은은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이 올해와 근접한 수준을 보일 경우 성장률이 기본 전망 대비 0.2%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가 2%까지 상향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은행
채권시장도 펀더멘털 개선에 한은 메시지가 더 호키시하게 진화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한은이 금리 인하 옵션을 약하게라도 살려뒀지만, 단기 내 인하 가능성을 점점 줄이는 방향으로 소통할 것이란 관측이다. 마지막 금리인하 옵션의 수명이 과연 얼마나 남았을지 채권딜러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셈이다.
마지막 인하 옵션의 가치는 내년 국고채 발행기조가 공개된 후 더욱 커졌다. 짧은 만기의 국고채는 통화정책 민감도가 더욱 높은데, 기준금리와 가장 가까운 국고채로 물량 확대가 예고돼서다.
기획재정부는 11일 연합인포맥스와 공동으로 주최한 '제12회 KTB(Korea Treasury Bonds) 국제 컨퍼런스'에서 내년 단기(2·3년) 발행 비중을 5%포인트 늘리고 특히 2년물의 발행을 늘려 단기 구간의 대표 연물로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익률곡선을 보면 기재부 정책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역대급 발행이 예고된 상황에서 조달 비용을 줄일 필요가 있고, 결과적으로 머니 듀레이션을 줄이는 것이 채권시장의 부담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특히 최근 보험사의 초장기물 수요가 주춤하는 분위기고, 일부에선 WGBI 관련 외국인 수요가 선반영됐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사지드 Z. 치노이 JP모건 아시아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전일 KTB 국제 콘퍼런스'에서 "전 세계 여러 경험을 토대로 보면 공식적으로 실질 편입이 이뤄지기 전에 60~70%의 자금이 이미 들어와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
채권시장의 커진 물량 부담과 개선되는 펀더멘털의 조합을 아우를 통화당국 묘수는 없을까.
개인적으론 전일 FOMC 행보에 눈길이 간다. '최대 고용'을 맨데이트로 뒀다는 점에서 '금융안정'을 맨데이트로 둔 한은과 비교가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포워드가이던스의 시계를 넓힌다면 채권시장에 충격을 줄이면서도 안정적으로 재정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전일 금융시장이 FOMC 결과에 환호한 것은 포워드가이던스의 시계가 길었기 때문이다. 향후 인하 결정이 신중해지고 동결이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내년 말까지로 보면 1회 인하 전망을 제시했다. 만약 3개월 시계의 포워드가이던스였다면 이러한 기조가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은이 3개월인 포워드가이던스 시계를 1년으로 확대한다면 당장 개선되는 펀더멘털 방향을 인정하면서도 채권시장의 무질서한 약세를 막을 수 있을 듯하다. 잠재 수준 성장을 채우지 못했다는 펀더멘털도 이러한 결정에 정당성을 더한다. 소수라도 1년 이내 인하 가능성을 열어둔 위원이 있을 것이란 전제하에서다.
역대급 국고채 발행이 예고되고, K자형 경제회복에 양극화가 충격을 주는 '오버킬' 우려를 피할 수 없다. 여러모로 볼 때 인플레 위험이 크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는 채권을 위한 '나라'도 있어야 한다. (경제부 시장팀 차장)
연합인포맥스
hwroh3@yna.co.kr
노현우
hwroh3@yna.co.kr
함께 보면 도움이 되는
뉴스를 추천해요
금융용어사전
금융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