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 5일 이재명 대통령이 충남 타운홀 미팅에서 했던 발언이 화제다. 이 대통령은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 때문에 욕을 많이 먹는 편인데 보니까 대책이 없어요. 땅은 제한돼 있고 사람은 몰려들고…"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책 역량을 총동원해 수도권 집값 대책을 다 짜내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면서도 "어차피 땅은 제한돼 있고 사람은 계속 몰리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그래도 근본적인 문제는 풀어보고 싶다"고 여운을 남겼다.
언뜻 듣기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원론적으로만 본다면 수요 과잉이 문제면 수요를 잡으면 되고, 공급부족이 문제면 공급을 늘리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차량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도심 내 도로를 확장하면 더 많은 차량이 도심으로 몰리게 되고 따라 차량정체가 해소되지 않는 도로 확장의 역설과 같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천안=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충남 천안시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열린 '충남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미팅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2025.12.5 superdoo82@yna.co.kr
이 대통령이 수도권 집값 발언을 한 장소가 지역 활성화를 논의하기 위한 장소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 주택가격을 잡겠다고 공급을 늘리면 수도권으로 몰리는 인구는 더욱 늘어난다. 그러면 지방은 더욱 소외되고, 이는 수도권으로의 이주를 가속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그러니 공급을 늘려 서울이나 수도권 집값을 잡겠다는 발상은 지역 소멸을 가속하겠다는 말과 다름없게 된다.
수요를 억제하는 것은 어떤가. 사실상 서울과 수도권 인기지역의 주택거래를 묶는 10·15 대책에도 고가 거래가 계속해서 나오며 가격 지표를 끌어올린다. 은행 대출을 꽁꽁 묶었지만, 다양한 소득원을 지닌 자산가들까지 막을 방법이 없다. 가족 간 부의 세습으로 의심되는 사례에 대해서 국세청이 전수조사하겠다며 칼을 뽑아 들긴 했지만, 코인, 주식, 해외주식 등 최근 급등했던 자산가격의 성과까지 차단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성장률이 정상화하면서 소득이 늘어난 이들의 주택교체 욕구를 언제까지 틀어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대통령의 "대책이 없다"는 발언이 마치 실제 대책이 없다는 것처럼 와전되자 대통령실은 대책이 모두 준비되어 있다고 진화에 나섰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책이 없다'는 발언의 진의는 "보다 긴 시간 동안 국토 균형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강훈식 비서실장이 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정부 6개월 성과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2.7 xyz@yna.co.kr
현재 정부가 어떤 형태의 대책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확실하다. 지난 9·7 대책에서부터 공급부족론을 불식시키기 위한 여러 실행계획을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은 새로 나올 것이 없다. 도심 내 유휴부지 등을 활용하거나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는 것이다. 재건축이나 재개발은 실제 주택공급 증가 규모가 작고, 철거기간 주택 멸실로 임대가격이 올라가는 등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일부 개발업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공급부족을 해소할 대안이 되기 어렵다.
경제사에서 공급부족 우려로 가격 급등이 일어났던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이른바 오일쇼크다. 지난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 있었던 오일쇼크는 세계 경제에 충격을 안겼다. 이스라엘과 갈등을 빚던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 감산으로 맞섰던 것이 1차 오일쇼크의 시발점이었다. 이에 따라 1년이 채 못 되는 사이 석유가격은 네 배가량 오르며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던졌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실제 공급 감소가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산운용사 대표인 홍진채씨가 저서 '주식하는 마음'에서 오일쇼크에 대해 제시했던 설명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973년 9월 아랍의 석유 총생산량은 하루 1천940만 배럴 정도였고, 감산이 심했던 그해 11월에는 하루 1천540만 배럴 정도였다. 순감소폭은 310만배럴인데 이는 세계 소비의 5.5% 수준이다. 경제학자였던 MIT의 모리스 아델만 교수는 이를 두고 "가격이 상승하는 이유는 실제적인 공급 감소가 아니라 공급 감소가 생길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라고 평가했다.
[출처: 연합인포맥스]
실제 공급 감소가 아닌 공급이 감소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부른 가격 폭등. 과거 오일쇼크에 대한 설명은 지금 서울 아파트값에 대입해도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공포가 부른 가격 폭등이 공급을 늘린다고 해소될까. 오히려 지금 가격 폭등과는 전혀 거리가 먼 서울 내 3분위 이하 아파트 가격 폭락을 가져올 우려도 있다. 게다가 수도권 쏠림 현상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나올 주택시장 안정책에는 공급 감소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는 것은 물론 똘똘한 한 채로 대변되는 초과 이익을 제공하던 특혜에 대한 손질도 포함돼야 한다. 필요하다면 세제개편까지 제시해 시장의 기대를 돌려세워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 대책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시장의 인식을 무너뜨릴 정도의 과감한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번 정부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다시 반복될 수 있다. (산업부장)
spnam@yna.co.kr
남승표
spnam@yna.co.kr
금융용어사전
금융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