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이달 원ㆍ달러 환율 평균이 1,470원을 넘으며 외환위기 이후 월간 기준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난 14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환전소 모습. 2025.12.14 yatoya@yna.co.kr
(서울=연합인포맥스) "우리나라는 이제 보건복지부 장관도 환율 발언을 해야 하는 건가요"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1월 24일 "환율 불안정성과 대외시장 변동성 확대 등이 부담 요인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시장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긴밀하게 대응해주길 바란다"고 언급했을 때 한 시장 관계자가 내놓은 평가다.
그렇다. 운용자산 기준 전세계 3위에 달하는 국민연금을 산하에 둔 보건복지부는 외환시장 관련 회의의 중요한 축이 됐다.
최근까지 환율 1,475원은 당국이 막는 레벨로 인식됐지만 원화 약세가 심상치 않게 유지되면서 외환당국은 전방위적인 방어 태세에 돌입했다.
당국의 공세 덕분에 달러-원 환율이 위로는 1,470원대, 아래로는 1,460원대 레인지 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환율이 하락세를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환율이 내리면 달러를 사겠다는 심리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양상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저점 매수세에 알고리즘 트레이딩도 한몫하고 있다는 추정마저 제기됐다.
외환당국 경계와 국민연금 전술적 환헤지로 달러 매도 물량이 유입돼 환율이 하락하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거래나 알고리즘 트레이딩이 저점 매수로 기계적 대응에 나서는 셈이다.
한 시장 참가자는 말했다.
"AI는 외환당국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니까요"
주말을 지나면서 서울외환시장에는 다시 경고등이 켜졌다.
환율 고점이 지난 13일 야간 연장거래 시간대에 1,479.90원까지 높아졌다. 당국 개입 경계심은 더욱 커졌다.
외환당국은 환율 변동성이 커지자 주말 동안 긴급회의를 열었다.
기획재정부는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주재로 긴급 경제장관 간담회를 열어 국내외 금융·외환 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회의에는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하준경 대통령실 경제성장수석, 이스란 보건복지부 1차관, 박동일 산업통상부 산업정책실장이 참석했다.
외환당국이 1,500원 환율을 앞두고 시장의 매수 심리를 식혀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 셈이다.
시장에는 '당국에 맞서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이는 법이지만 시장의 질서를 바꿀 수 있는 외환당국의 의지를 거스르기는 어려움을 보여주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외환당국은 외환보유액을 비롯해 막강한 자금 동원력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11월말 기준 4천288억달러 수준이다. 3조3천433억달러를 보유한 중국, 1조3천474억달러를 가진 일본, 그 다음으로 스위스, 러시아, 인도를 거쳐 대만도 6천2억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보유액과 9천억달러 이상의 운용자산을 가진 국민연금이 함께 움직인다면 외환시장 방어력은 결코 약하지 않다.
국민연금 환헤지 물량이 더해지면 당국의 달러 매도 파워는 더욱 커진다.
다만, 달러 매수 개입과 달리 매도 개입은 당국 입장에서도 쉽지 않다.
매수 개입의 경우라면 한국 원화를 활용하는 만큼 외환당국이 강하게 할 수 있지만 달러를 매도하는 쪽은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쓰는 쪽이라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 외환당국 입장에서는 좀 더 신중하게, 효율이 좋은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특히 최근처럼 알고리즘 트레이딩이 활발해진 상황이라면 5원 안팎의 하락폭은 오히려 저점 매수를 부를 여지도 있다.
달러-원 환율이 1,500원선으로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크게 꺾을 수 있어야 환율 하락 전환을 모색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 물량은 환율 방향키를 바꿀 만한 요인이다. 연금 입장에서도 환율이 하락세로 전환되면 대규모의 전략적 환헤지에 따른 결과는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이는 투기세력을 근절하는 차원에서도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만한 물량이다.
투기세력의 베팅이 더해질 경우 달러-원 환율의 변동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투기세력과 각국 외환당국의 전쟁은 치열했다.
전세계에서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도 투기 세력과의 대결은 불가피했다.
일본 당국은 지난 1995년 4월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를 중심으로 한 헤지펀드들이 대규모로 엔화 매수에 나서면서 투기세력 근절에 나서야 했다.
당시 달러-엔 환율은 개장초 1시간 반의 시간 동안 83엔대에서 80엔선이 위태로울 정도로 급락했고, 일본 외환당국은 긴급 환시개입에 나서야 했다. 일본은행(BOJ)이 금리인하까지 시사한 후 투기세력과의 싸움은 한숨 돌렸다.
중국 위안화도 투기세력의 목표물이 된 적이 있다.
2016년 중국 인민일보는 "소로스가 중국에 전쟁을 선포했다"며 위안화와 홍콩달러 하락 베팅 시도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해 1월에는 역외 달러-위안(CNH) 환율은 6.48위안대에서 6.60위안대로 오른 후 줄곧 레인지 장세로 접어들었다. 이어서 2월 15일에는 달러-위안(CNH) 환율이 하루 만에 6.57위안대에서 6.48위안대로 급락했다.
위안화 강세를 위해 중국 인민은행(PBOC)은 고시환율을 0.3%로 큰 폭 절상했고, 중국 인민은행장은 "위안화를 계속 평가절하할 필요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투기세력과의 총성 없는 전쟁은 지속돼 왔다. 그리고 대체로 '당국에 맞서지 말라'는 격언에 들어맞았다. 문제는 투기세력이 언제나 패배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1992년 영국의 잉글랜드은행(BOE)은 투기세력의 파운드 약세 베팅에 외환보유액을 소진한 것은 물론 환율 방어에도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외환시장은 구조개선을 위해 야간 연장거래를 새벽 2시까지 열어두고 있다. 앞으로는 24시간 열어두는 시대도 올 예정이다.
야간 시간대는 거래량이 적고, 시장 대응이 쉽지 않아 환율 변동성이 커지는 경우가 생긴다.
야간에 고점과 저점이 레인지 밖으로 뚫리면 다음날 현물환 시장에서도 심리적 레벨로 작용한다는 점이 리스크 요인이다.
그만큼 취약한 시간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외환당국의 탄탄한 방어력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때에 국민연금 역시 우리 외환시장에서는 중요한 주체다.
수익 실현을 위해 해외투자를 조정하거나 환헤지 필요성이 있다면 환율 안정을 위해 동원하지 않더라도 시장 주체로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고민은 남는다. 우리 외환시장은 AI트레이딩에 따른 기계적 베팅과 투기적인 움직임이 있을 때 맞설 수 있는가. 생각해 볼 문제다.(경제부 시장팀장)
syjung@yna.co.kr
정선영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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