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달러-원 환율은 위기 수준인가. 환율이 급등할 때면 금융시장에서 이런 질문이 나온다. 통상 외환 당국자들은 환율 수준을 두고 '위기'라고 부르는 것을 꺼린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감염증 사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지난 2022년에 달러-원 환율이 1,300원선을 뚫었을 때도, 이후 1,400원대로 치솟았을 때도 당국은 달러-원 환율을 위기 수준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이는 2024년 연말 때아닌 계엄 사태로 환율이 1,400원대로 진입했을 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와 통상 압박으로 환율이 1,400원대로 재차 올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외환당국이 환율 수준을 '위기'라고 못 박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그로 인해 투자심리를 자극할 우려도 크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달러-원 환율 급등세는 외화유동성 위기가 아니라는 점에는 대부분의 시장참가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올해 유독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달러 매수가 집중된 영향이 컸다.
국내 시장에서 달러 자금 부족이 일어난 상황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순대외 채권국으로서, 달러 유동성 걱정을 하던 과거와 달리 외채보다 해외 자산이 더 많은 상태다.
외환당국자들도 환율이 위기 수준은 아니며, 달러 유동성 우려도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외환당국이 달라졌다.
달러-원 환율 1,450원~1,480원대에서 '위기급 대응'에 나서고 있다. 외환시장의 수급 주체인 국민연금에 이어 수출업체, 증권사를 차례로 소집해 달러 환헤지 필요성을 역설하고, 외환시장 유동성 대책까지 쏟아냈다.
외환당국은 수출업체들을 지난 11월 14일 이후 총 4회에 걸쳐 불러 모았다.
달러 환헤지 현황을 파악하고, 수출기업들이 달러 자금을 쌓아두지 않도록 요청하기 위해서다.
전일 서울외환시장에는 외환 건전성 제도의 탄력적 조정 방안이 대대적으로 발표됐다. 외화유동성 스트레스테스트의 감독상 조치 부담을 줄이고, 내년 6월 말까지 스트레스테스트를 유예하기로 했다. 스트레스테스트를 유예함으로써 금융기관들이 달러를 과도하게 보유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외국인 증시 유입을 위해 외국인 통합계좌 개설 주체 제한도 폐지했다. 앞으로는 외국인이 별도의 국내 증권사 계좌 없이도 통합 계좌를 통해 한국 주식을 바로 거래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겼다.
선물환 포지션 비율 규제도 자기자본 대비 200%로 완화하기로 했다. 외국계 은행 국내지점과 달리 국내 법인 형태로 운영되는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을 대상으로 한 조치다. 이에 국내은행 수준으로 적용되던 75% 선물환 비율 한도를 200%로 늘려줌으로써 외화를 보다 유연하게 조달, 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외환 건전성 제도 조정으로 수출기업의 원화 용도 외화대출 허용 대상도 국내 운전자금까지 확대된다.
외환당국자 발언의 수위도 달라졌다. '위기'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위기감이 감지된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일 "외환시장의 변동성 확대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구 부총리는 "왜 자금이 해외로 나가는지를 이해하고 구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전통적인 금융 위기라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우리나라는 현재 순대외채권국이기 때문에 환율이 절하되면 이익 보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면에서는 위기라 할 수 있고 걱정이 심하다"며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고 환율이 오르면 내부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극명하게 나뉜다"고 지적했다.
환율 수준이 높지만 외화유동성 상황이 나쁘지 않다면서도 위기감이 감도는 대응책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왜일까.
기본적으로는 올해 연말을 불과 6거래일 앞두고, 환율이 1,500원 선에 근접한 영향도 한몫한다. 외환당국이 12월에 높은 환율 수준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올해 연말 종가가 결정된다. 달러-원 환율 연말 종가는 기업과 은행의 재무제표, 실적 평가, 리스크 관리, BIS 비율 등에 기준이 되는 숫자다.
이와 함께 강도 높은 대응책은 극대화된 수급구조 불균형에 적극 대처하려는 외환당국의 의지이기도 하다.
당국자들은 환율이 일방향이며, 앞으로도 달러-원 환율 수급이 과도하게 쏠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올해처럼 민간의 해외 투자 급증에 따른 수급 불균형의 상황은 외환당국도 처음 겪는 일이다. 즉 외환 방파제를 점검하고, 본격적인 대응에 나설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외환당국은 앞서 지난해 말에도 한 차례 '외환수급 개선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1년이 지나는 동안 고환율을 경험하면서 추가적인 외환수급 개선방안이 더욱 절실해진 셈이다.
올해 말에 수급구조 개선방안을 꾸준히 모색해야 내년에도 환율이 1,500원대를 향해 한 방향으로 쏠리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외환당국이 겹겹이 쌓아둔 전방위 대응책은 연말이 지날수록 점점 효과를 발휘할 공산이 크다. 그리고 이 대응책은 국민연금, 수출기업의 환헤지와 국내로의 달러 자금 유입이 본격화되는 국면이 되면 힘이 더욱 커진다.
오랫동안 외환시장을 봐 온 베테랑 시장 참가자들은 말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하늘 끝까지 자라는 나무는 없다" (경제부 시장팀장)
syjung@yna.co.kr
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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