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달래려 오랜 시간 가깝게 지낸 펀드매니저를 만났다. 그는 대형 자산운용사에서 퇴직해 여전히 투자 쪽에서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그가 쓴 책은 한때 절판돼 중고 사이트에서 10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는 신화를 쓰기도 했다. 그만큼 투자 업계에서는 구루(Guru)로 통한다.
그는 함께한 자리에서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올해는 자신이 지켜온 투자 원칙이 근본부터 깨진 것 같아 혼란스럽다고 했다. 10여년 넘게 알고 지냈지만 이런 이야기를 건넨 건 처음이었다.
올해 서울 아파트값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간 8.25% 상승률이라는 숫자는 문재인 정부 당시 집값 상승률을 웃도는 수치다.
앞서 언급한 펀드매니저는 오직 채권과 주식이라는 금융자산으로 투자수익을 거두고 부동산을 가지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몸소 보여주기 위해 본인도 자가가 아닌 전세로 살고 있다. 그 역시도 서울 아파트 한 채가 이런 식으로 우상향을 보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투자에 대한 철학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것이냐는 그의 자조 섞인 말은 현재 시장이 얼마나 비이성적인지를 방증한다.
그가 추구하는 수익률은 연간 7~8% 정도다. 이러한 수익률에 배당 수익 등을 추가한다. 해마다 이런 수익률을 꾸준히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이런 그에게 송파구가 올해 기록한 20%가 넘는 상승률은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수준이다.
[출처:한국부동산원]
올해 부동산 시장을 보고 그가 평생 지켜온 자신의 투자철학을 쉽게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 아파트를 포트폴리오에 넣겠다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올해 집값 상승분은 내년 집값에 영향을 끼치는 시한폭탄으로 남아있다.
대부분의 기관이 내년에도 집값이 우상향이라는 데 동의한다. 여기에는 공급부족이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에도 의견일치를 보였다.
최근 부동산 플랫폼 직방은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올해에 비해 반토막이 난다는 전망치를 내놓았다. 정확하게는 올해보다 48% 줄어든 1만6천412세대가 내년 서울의 입주 물량이다. 이 중 87%는 재발과 재건축 등 정비사업이 완료된 사업장이다. 서울은 재건축과 재개발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전국으로 따져보면 총 17만2천270세대로 올해보다 28% 감소한 수준에서 입주가 예정돼 있다.
[출처:직방]
입주 물량이 줄어들면 이에 연동해 전세 물량도 급감한다. 이른바 '입주장'이라고 불리는, 새 아파트의 입주가 진행될 때 전세가 일시적으로 싸게 풀리는 시장 자체가 급격히 얼어붙는다는 이야기다. 공급 부족으로 전세가 상승하면 집값을 떠받치는 역할을 한다.
유동성 지표 등 거시지표 역시 집값 상승에 우호적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최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광의통화(M2)는 2018년에 2천626조원에서 2022년에 3천722조원으로 4년 사이 1천조원이 늘어난 데 이어 올해만 400조 원이 추가로 유입됐다. 경제성장률을 크게 상회하는 유동성이 자산 가격을 밀어 올리는 강력한 에너지가 됐다는 것이 주산연의 분석이다.
주산연은 지난 10년 동안 명목성장률을 크게 상회하는 유동성 증가로 자산 가격 상승압력이 높아진 상태에서 지난해 9월 시작된 미국 기준금리 인하로 대출금리 하락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난 4년 동안 누적된 60만호 수준의 착공물량 부족으로 내년에 갑작스러운 금리상승이나 경기 악화가 초래되지 않는 한 주택 가격은 올해의 상승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출처:주택산업연구원]
이런 요인들을 토대로 주산연은 내년 서울 집값이 4.2% 상승한다고 예상했다. 이는 아파트를 포함한 빌라 등 다세대 주택 등 모든 주택을 포함한 숫자다. 올해도 이 기준으로는 서울 집값이 6.6% 상승했다. 아파트에 비해서는 1.65%포인트 상승률이 낮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내년 서울 아파트 값만 따졌을 때 단순 계산하면 상승률이 5.85% 정도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예상은 언제나 틀려왔다. 올해 초만 해도 집값 하락을 점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당연하게도 서울의 급등장을 예견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전문가의 예상마저 무너뜨린 '집값 포비아'는 이제 막연한 공포를 넘어, 유동성과 공급 불균형이 만들어낸 냉혹한 현실이 돼가고 있다.
희망은 남아있다. 내년 1월 정부가 발표할 공급 대책이 이 거대한 흐름을 돌려세울 수 있을지 시장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산업부 차장)
msbyun@yna.co.kr
변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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