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충실의무 상법 개정에도…법원, '위반 주장' 까다롭게 판단
"경영상 목적 넓게 해석해 기업 거버넌스 후퇴 우려"
(서울=연합인포맥스) 김학성 기자 = 고려아연[010130]의 신주발행을 금지해달라며 영풍[000670]과 MBK파트너스가 신청한 가처분을 법원이 기각했다. 영풍·MBK는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위반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결정을 두고 시장 참여자들은 올해 7월 개정된 상법상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법정에서 무력화되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했다. 특정한 상황에서는 법원이 증명 책임을 주주가 아니라 경영진에게 지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출처: 고려아연]
26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는 영풍·MBK가 신청한 고려아연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지난 24일 기각했다.
앞서 영풍·MBK는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가 참여하는 외국 합작법인을 대상으로 2조8천500억원(10.59%) 규모의 신주를 발행하는 것을 막아달라는 가처분을 내며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이번 신주발행의 주된 목적이 현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여서 경영상 목적이 없다는 점, 미국 제련소 투자가 중대한 거래여서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한다는 점, 신주발행이 특정 주주에게만 이익이어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이었다.
특히 영풍·MBK는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시행된(7월) 이래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의 이사의 충실의무가 직접적으로 문제가 되는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법원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법원은 영풍·MBK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주주 충실의무 위반과 관련해 "개정된 상법하에서도 이사는 '주주 전체'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면 되는 것이지 모든 개별 주주의 요청에 따라 업무를 수행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라며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줬다.
또 법원은 이번 신주발행에 대한 고려아연의 경영상 목적을 폭넓게 인정했다. 재판부는 "신주발행이 다른 방안에 비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특정 주주만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자본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고려아연의 이번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영풍·MBK와 지배권 경쟁 열세를 만회하려는 최윤범 회장의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경영권 분쟁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고려아연의 이번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정기주주총회 기준일 직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특정 주주의 지배력에 직접적 영향을 주려고 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라면서도 "이 점에 대한 증명 책임이 주주에게 있는 한 주주가 짧은 기간 내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인용 받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법원이 '경영 간섭 최소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주주 보호 강화라는 상법 개정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상법이 개정돼도 실무적으로 변화가 크지 않을 것이라던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법원이 개정 상법에 맞는 판결을 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경영상 목적을 아주 넓게 해석해 오히려 기업 거버넌스가 후퇴하는 것 아닌지 우려한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 18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신주발행의 결과 지배주주나 경영진이 지배권 확보에 유리한 입장이 되더라도 이를 경영상 목적 달성의 부수적인 효과로 볼지, 아니면 지배권 강화 목적의 신주발행으로 볼지 여부는 재판부의 주관적인 판단 영역에 있다"며 "법원이 제3자에 대한 신주발행 관련 분쟁에서 회사의 경영상 목적 달성은 비교적 폭넓게 허용해주고 지배권 방어 목적은 축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 결론이 난 태광산업[003240] 교환사채발행금지 가처분에서도 원고 트러스톤자산운용은 개정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을 주장했지만, 이때도 법원은 회사의 자금조달과 관련한 사항을 가급적 존중해야 한다면서 이러한 주장을 배척했다.
앞서 언급된 변호사는 "상법에 주주 충실의무가 명시된 이상 법원도 주주 간 지분 경쟁 상황에서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하게 그 필요성을 경영진이 증명하도록 증명 책임을 전환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hskim@yna.co.kr
김학성
hs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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