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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영의 FX환담] 전략적 모호성과 환율

26.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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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균 '역대 최고' 환율 찍나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올해 외환 거래 마감을 이틀 앞둔 가운데 연말 환율 종가가 작년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커졌지만 여전히 역대급으로 높은 수준이란 점에서 불안감이 남아있다. 지난 26일까지 주간거래 종가 기준 올해 평균 환율은 1,421.9원이다. 이는 외환위기였던 1998년(1,394.9원)보다도 높아 역대 최고 수준이다. 사진은 28일 서울 중구 명동의 환전소. 2025.12.28 saba@yna.co.kr

(서울=연합인포맥스) 포커게임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대방의 얼굴 표정이나 행동으로 읽을 수 없을 때 이를 '포커페이스'라고 한다. 대화를 위해서는 오감이 동원된다. 손을 자주 움직이는지, 눈빛은 어디로 향하는지, 찡긋거리는지 힌트를 찾아야 한다. 포커페이스는 상대방의 수를 읽어야 하는 게임에서는 현저히 유리한 전략으로 통한다.

최근 서울외환시장에서 정책 당국의 포커페이스를 읽어야 하는 상황이 중요해졌다. 시장에서는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라는 개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전략적 모호성은 민감한 이슈가 있을 때 모호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전략을 말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와 관련해 시장에서 개시 레벨 관측이 공공연하게 나오자 "시장에서 이미 전략을 다 알고 있고, 이에 따라 환율의 쏠림도 나오고 있다"며 "전략적 모호성을 확대해 외환시장에 대한 영향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환헤지를 할 때 특정 레벨에서 기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나올지 알 수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외환당국의 개입 스탠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어야 시장 참가자들이 조심할 수 있고, 당국도 적절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략적 모호성'은 연말 장세에서는 기대되기 어렵다. 연말은 외환당국의 종가 관리가 불가피한 시점이다. 국민연금의 환헤지 물량이 아니더라도 연말 종가를 1,480원 선에서 마감하진 않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앞서 외환당국이 줄줄이 외환시장 안정책을 발표하면서 강도 높은 예고편을 펼쳐놓았다. 정책을 쏟아내는 과정에서 대규모 실개입을 하지 않은 점은 모호성을 보인 대목이었다.

그러나 연말 종가를 5거래일 정도 앞둔, 크리스마스 휴장 직전, 장이 얇은 때에 외환당국이 고강도 개입에 나선 점은 개입 효과가 큰 타이밍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외환당국은 지난 24일 개장 직후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정책 실행 능력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며 이례적인 구두개입에 나섰다. 달러-원 환율은 지난 24일과 26일 2거래일 동안 43원 이상 급락했고, 장중 1,429.50원까지 저점을 낮췄다.

이는 외환당국이 연말 종가를 1,450원 선 아래로 낮추기를 원한다는 점을 시장 참가자들이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국민연금의 전략적 모호성은 어떻게 됐을까. 환율이 1,480원선에 가까워져도 국민연금이 바로 환헤지에 강하게 나서지 않자 시장에서는 의구심이 일었다. 연금의 환헤지 레벨이 1,490원 선으로 높아졌을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실제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는 오히려 환율이 1,480원대에서 1,440원대로 급락하는 과정에서 유입됐다.

연금 환헤지는 환율 1,440~1,480원대 사이에서 정확한 레벨이 탐지되지 않았을 뿐 1,470~1,480원대에서 나올 것이라던 시장 전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상 종가 관리가 이뤄지는 연말 장세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추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격적인 전략적 모호성은 새해 환율 변동성 관리에 적용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 역시 그리 쉽지는 않다.

새해에는 환율이 상승하면 국민연금의 환헤지가 이뤄질 수도 있다.

이미 환헤지를 개시한 상황에서 1,480원 선 위로 환율이 상승하는 것을 용인하기는 쉽지 않다. 환헤지로 손실을 볼 경우 국민들의 노후 자금을 이용해 환율을 방어했다는 비판이 커질 수 있어서다.

관건은 내년 달러-원 환율 하락세의 지속 가능성이다. 올해 연말에 쏟아져나온 외환시장 안정책이 내년에 새로운 외환시장 수급 구도를 만들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외환당국은 외환시장 유동성 안정책과 정부의 수출업체 달러 환헤지 압력, 서학개미 본국 귀환을 위한 국내투자·외환안정 세제지원 방안', 6개월간 한시적 외환건전성 부담금 면제와 외화지준(외화예금초과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 지급(부리) 등을 발표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특히 이번에 내놓은 해외자회사 수입 배당금의 익금불산입률 100% 상향 조치로 기업의 해외유보금이 환수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새로 도입될 국내시장 복귀계좌(RIA)에 서학개미들이 해외투자 자금을 원화로 환전할 가능성도 열려있다.

외환당국이 끌어내린 환율은 연말 롱심리를 차단하는 효과를 발휘했을 뿐 원화의 체력이 개선된 것은 아니다. 과도하게 달러 유출로 쏠렸던 수급 구도가 바뀐다면 달러-원 환율이 레벨을 낮출 수 있다. 우리 외환시장은 세계국채지수(WGBI) 자금 유입이라는 카드도 남아있다.

그러나 정책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불확실성은 해마다 외환시장을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새해에 글로벌 금융시장은 물론, 지정학적 요인도 원화에 우호적인 여건이 뒷받침돼야 한다. (경제부 시장팀장)

syjung@yna.co.kr

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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