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인이 된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발언 이후 한명의 인재가 기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은 재계의 상식이 됐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한 명의 천재가 10만명의 직원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온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히는가 하면 "사장의 역할 중 50%는 인재를 찾는 일이다. 좋은 인재를 데려올 수 있다면 삼성이 가진 무엇과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하는 등 인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렇게 발굴한 인재에 대해서는 "S급 인재는 일반사원과 똑같이 대우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환경과 보상을 제공해 오직 연구와 혁신에만 몰입하게 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이러한 인재관은 당시의 시대적 흐름과 맞닿아 있다. 삼성이 가장 가깝게 지냈던 글로벌 기업 중 한 곳인 제너럴일렉트릭(GE) 역시 인재 발굴을 중시했다. 거침없는 구조조정으로 '중성자탄 잭'이라고 불렸던 잭 웰치 GE 회장은 취임 후 첫 번째 임무가 후계자 발굴이라고 할 정도로 인재 발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GE의 인재양성소인 크로톤빌을 매달 찾아 차세대 리더가 될 인재들과 토론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회장과 삼성의 주요 임원들도 크로톤빌을 거쳐 갔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두 회사의 인재관이 닮았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도 없다.
[출처: 구글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지금은 잘 언급하지 않는 'S급 인재'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린 것은 송창현 현대차그룹 AVP본부 사장의 사임 소식을 접하면서였다. 자동차 제조사인 현대차그룹에서 송창현 사장의 이력은 결이 달랐다. 그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정보통신(IT)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경험을 쌓았다. 국내 최대 IT기업 중 한 곳인 네이버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역임했고 네이버의 연구개발(R&D) 회사인 네이버랩스 설립을 주도했다. 이후 모빌리티 서비스 스타트업인 포티투닷(42dot)을 창업했다. 그는 이후 현대차그룹의 모빌리티 총괄 담당 사장으로 영입됐고 현대차그룹은 그가 창업한 회사를 거액에 인수하는 등 아낌없는 애정을 보였다. 송창현씨의 영입과정에서 현대차그룹이 보인 모습은 기업이 한 명의 인재에 대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이달 초 회사를 떠났다. 현대차그룹은 "송창현 사장이 최근 일신상의 사유로 회사에 자진 퇴임 의사를 밝혔으며 회사는 송 사장의 결정을 존중해 사임을 수용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테슬라에 비해 현저히 뒤처진 자율주행기술 개발이 송 사장 사퇴의 배경일 것으로 추정했다. 현대차그룹은 송 사장이 이끌던 AVP본부를 통해 자율주행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했으나 테슬라가 자율주행 3단계 수준의 서비스를 선보일 동안 전혀 이를 따라잡지 못했다. 송 사장은 퇴임 전날 포티투닷 임직원에 보낸 메시지에서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라는 거대한 전환을 이끄는 동안 보이지 않는 수도 없는 벽에 부딪힐 때마다"라는 말을 남겨 사임의 배경에는 상당한 내부 갈등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여기서 잠시 시선을 돌려보자. 앞서 언급했던 인재 제일을 강조했던 GE는 현재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가. 잭 웰치는 그토록 후계자 선정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그런 그가 골랐던 후계자 제프리 이멜트는 2017년 미국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지경으로 회사를 몰락시켰다. 한때 제국으로 불렸던 GE는 현재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구시대의 기업으로 기억된다.
[출처: 구글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최근 국내 기업인들 사이에서도 한 명의 인재가 기업을 좌우하는 시대가 갔다는 의견이 나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 개발을 총괄하는 디바이스 설루션(DS) 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 송재혁 사장은 지난 10월 열린 반도체대전 기조연설에서 "모든 혁신은 협력에서 나온다고 믿고, 제 경험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송 사장은 "한 명의 똑똑한 천재가 '나를 따르라'하는 경우는 29년 동안 잘 못 봤다. 다양한 의견과 이견들이 모여가며 혁신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대를 선점하면서 삼성전자의 아성을 위협하는 SK하이닉스의 기업문화를 상징하는 단어가 '원팀 스피릿'이라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음미해 볼 만하다. 인공지능(AI) 시대에서 탁월한 역량을 갖춘 인재의 가치는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토론과 협력을 통해 자기 주장을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춘 사람이 새로운 시대의 인재가 아닐까. (산업부장)
spnam@yna.co.kr
남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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