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원화 약세가 가파른 속도로 진행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2022년 및 2024년 하반기 중 달러-원 상승 속도보다는 낮았으나 환율을 둘러싼 불안과 논쟁은 오히려 더 컸다. 환율이 고점을 높이자 위기 가능성이 거론됐고, 여론은 정책 당국의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환율 상승 국면이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전혀 다른 이유에서 발생했음에도 불안이 컸던 것은, 미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서도 원화가 약세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특히 하반기 이후 트럼프 정부의 관세 압박과 대미 투자 요구가 시장 심리를 매우 취약하게 만든 것이 원화 약세를 두드러지게 했다.
2025년 중 원화가 왜 이러한 약세를 보였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이어졌다. 이제 우리는 단기적인 수급이나 심리 요인뿐만 아니라, 성장 잠재력 하락, 저축의 투자 초과, 낮은 투자수익률 등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도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율 상승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할 것인가.
만일 교과서에서처럼 수요와 공급 곡선을 정확히 그려낼 수 있다면 균형환율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결국 시장이 경험적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적정환율 수준을 특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율이 무엇이며 우리 경제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국경제는 금리와 환율이 모두 시장에서 자유롭게 변동하는 체제로 전환했다. 이는 경제 운영의 기본 원리를 시장 중심으로 재편한 근본적인 변화였다. 금리와 환율을 행정적으로 관리하던 과거의 방식은 국내외 기초경제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고 그 결과 불균형이 누적되며 위기로 이어졌다.
이러한 전환의 효과는 먼저 금리 영역에서 나타났다. 외환위기 이후 금리는 시장 수급과 위험을 반영하는 가격으로 자리 잡았고 통화정책 역시 금리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체계로 정착됐다. 금융자원의 배분 효율성이 높아졌고 이는 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비교적 빠르게 안정을 되찾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환율 역시 새로운 체제 아래에서 중요한 조정 기능을 부여받았다. 변동환율제로의 전환은 환율을 국내외 펀더멘털 변화와 글로벌 금융 여건을 반영하는 시장가격으로 재정의한 선택이었다. 경제 여건이 변화할 때 환율이 먼저 반응하며 이를 흡수하는 것은 개방경제에서 대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메커니즘이다.
자본 이동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환율을 일정 수준에 고정하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자본은 수익률과 위험을 기준으로 이동하고, 그 과정에서 환율은 변동한다. 환율 변동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려는 시도는 기대를 왜곡하고 투기적 자본 이동을 자극해 조정 부담을 키운 사례가 적지 않았다.
다만 환율 조정이 항상 완만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불확실성이 크고 불균형이 누적된 국면에서는 환율이 오버슈팅(overshooting)하며 실물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조정 속도와 기대의 쏠림 자체가 문제가 된다.
2025년 하반기에 나타난 가파른 원화 약세는 구조적 요인과 대외여건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본 엔화와 대만 달러화도 약세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의 추가적인 약세는 경제 여건 자체보다는 불확실성 확대 속에서 시장 기대가 한 방향으로 쏠리며 증폭된 성격이 강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크리스마스 전날 정부와 한국은행의 대응은 시의적절했다고 평가된다. 과도하게 부풀어 오른 기대와 쏠림을 진정시키는 데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직접적인 시장 조치뿐 아니라 수요와 공급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시장이 다시 균형을 찾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26년은 시장이 차분하게 균형을 찾아갈 시간이다. 그 수준은 1,400원대의 고환율이 드러낸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이 완화되는 과정에서 형성돼야 한다. 중기 기대환율을 낮출 수 있는 거시경제 운용과 함께 성장 잠재력과 투자 여건을 개선하는 구조적 정책 대응이 병행될 때 환율은 비로소 의미 있는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지속 가능한 균형은 단기수급의 조정이 아니라 경제 펀더멘털의 변화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이승헌 숭실대 교수/ 전 한국은행 부총재)
신윤우
ywsh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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