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방풍나물 200g, 3천원.
지난 31일 국회 청문회장. 한 남성이 검은 모자에 검은 마스크를 쓴 채 참고인석에 앉았다.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지금도 쿠팡에 상품을 납품하고 있는 한 업체의 대표다. 쿠팡과 거래를 이어가는 한, 얼굴이 공개되는 순간 회사와 직원들이 감당해야 할 후폭풍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3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얼굴을 가린 소상공인 참고인이 쿠팡의 불법 행위와 횡포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2025.12.31 utzza@yna.co.kr
그는 이 자리에서 2022년 자신이 쿠팡을 처음 고발하게 된 계기가 '방풍나물'이었다고 밝혔다. 쿠팡에서 어느 날 '인기 상품'이 된 방풍나물 200g, 3천원짜리 상품이 쿠팡의 PB상품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다.
자신의 회사도 비슷한 피해를 여러 차례 겪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고발을 망설였다. 그러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한 소상공인이 방풍나물을 손질하며 아무것도 모른 채 같은 일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자,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후 쿠팡의 검색창에는 이전보다 더 비싸진 쿠팡 PB 방풍나물만 남았다. 원래의 판매자는 이유도 모른 채 인기상품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가 쿠팡을 고발하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2022년, 쿠팡의 PB상품 우대행위는 그의 고발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1천628억원의 과징금으로 이어졌다. 국회에 출석한 입점업체 대표는 쿠팡이 판매 데이터를 활용해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품을 PB로 출시하고, 해외 생산공장까지 찾아가 기존 거래처를 배제하는 과정을 증언했다. 이는 단순한 갑을 갈등이 아니라 플랫폼 사업자가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경쟁 질서를 어떻게 훼손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문제는 그 이후다. 과징금이라는 중징계에도, PB상품을 통한 인기상품 탈취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방식은 더 정교해졌고, 피해는 더욱 영세한 사업자에게 집중됐다는 것이 고발자의 진술이다. 문제를 제기하면 거래 단절이라는 보복이 따를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상당수 업체는 침묵을 택했다. 플랫폼 위의 거래는 '선택'이 아니라 '종속'이 됐다.
이런 구조는 쿠팡만의 일탈이라기보다 플랫폼 독점이 굳어질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폐해다. 데이터와 유통망, 검색 노출과 가격 결정력을 동시에 쥔 사업자가 심판과 선수의 역할을 겸하면 공정한 경쟁은 성립하기 어렵다. 방풍나물, 즉석밥, 화장지, 주방세제처럼 생활 밀착형 상품일수록 그 피해는 빠르게, 그리고 조용히 확산한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 사진]
소상공인의 피해는 쿠팡이 성장에만 매달린 나머지, 함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할 파트너를 외면한 결과다. 플랫폼 위에서 소상공인은 더 이상 동반자가 아니라 데이터와 매출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취급됐다. 이러한 시선은 거래 관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업이 성장과 효율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상생이라는 기준을 내려놓는 순간 그 대상은 누구든 '비용'으로 전환된다.
논란이 되는 쿠팡의 과도한 야간 근로문제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노동자를 함께 성장해야 할 구성원이 아니라, 줄이거나 소모할 수 있는 비용으로 인식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새벽 배송이라는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반복되는 장시간·고강도 야간노동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개별 현장의 관리 실패가 아니라 이익과 성장만을 지표로 삼는 기업 운영방식의 결과다.
장시간 노동으로 숨지는 근로자가 발생했음에도 원인 규명보다 이를 은폐하는 데 급급한 모습은 기업이 근로자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회에서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진정성 있는 사과나 책임 있는 설명 대신 회피성 발언으로 일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책임을 인정하는 순간 뒤따를 비용과 부담을 먼저 계산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소상공인의 상품이 인기와 성과를 이유로 플랫폼에 흡수되듯, 노동 역시 속도와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소모된다면 이 구조는 지속될 수 없다. 상생을 외면한 성장은 결국 또 다른 약자를 만들어낼 뿐이다. 쿠팡이 당장 멈춰야 할 것은 근로자와 파트너를 단순한 비용으로 환산해온 성장방식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쿠팡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고객 신뢰 복원을 위해 1조6천850억원 규모의 고객 보상안을 마련했다고 29일 발표했다. 보상 계획에 따라 쿠팡 와우·일반·탈퇴 고객 등 3천370만명에게 1인당 5만원의 보상금을 내년 1월 15일부터 순차적으로 지급할 방침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 한 쿠팡 물류센터 모습. 2025.12.29 cityboy@yna.co.kr
정보 유출 사태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소비자 데이터와 판매정보, 시장의 흐름을 좌우하는 방대한 정보가 한 기업에 집중될수록 그 위험은 커진다. 정보 유출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엄중하게 다뤄야 하는 이유다.
플랫폼 독점이 위험한 이유는 명확하다. 그 피해가 소비자, 소상공인, 노동자에게 동시에 전가되기 때문이다. 선택지는 줄고 가격은 오르며, 노동은 소모되고, 정보 유출에 따른 비용은 커진다. 단기적 편리함 뒤에 장기적 비용이 쌓이는 구조다.
이제 쿠팡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PB상품이나 더 빠른 성장 속도가 아니다. '멈춤'과 '전환'이다. 플랫폼의 힘을 인정받은 만큼 이제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소상공인의 성과를 탈취하는 구조에서 벗어나고, 근로자와 소비자에 대한 책임 있는 운영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정부와 국회 역시 사후 과징금에 그치지 말고 플랫폼 독점에 대한 실질적인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방풍나물에서 시작된 문제는 절대 작지 않다. 그 작은 나물이 보여준 것은 고삐 풀린 플랫폼 경제의 민낯이다. 이 경고를 또다시 무시한다면 제2·제3의 방풍나물은 계속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뒤늦게 묻게 될 것이다. 왜 그때 멈추지 못했는지를. (산업부 차장)
ysyoon@yna.co.kr
윤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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