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디테일'과 '거침없는 발언'.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의 시그널이다. 취임 반년이 채 안 됐지만, 그의 존재감은 금융업계와 시장에서 확실히 각인되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와 금융업권 간담회, 기자 간담회 등 여러 공개된 자리를 통해서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원장은 현장의 작은 부분까지도 집요하게 파고드는 스타일로 평가된다. 취임 초기부터 이 원장은 금융상품 판매 관련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금융상품 사전 신고 제도가 형식적 심사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설계·심사 단계부터 소비자 관점이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에서 금감원이 강제 수사권이 없어 증거 인멸이 발생한다는 문제를 꼬집으며 특별사법경찰(특사경)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원장은 공식석상 발언 때에서도 주저함이 없다. 부드러운 인상에 낮은 톤이지만, 그의 말 곳곳엔 '송곳'이 있다. 최근 금융지주 CEO들이 연임 욕구에 사로잡혀 이사회를 자기 사람으로 채우는 관행을 JP모건 사례와 비교하며 직격한 것은 업계의 고질적 문제를 정면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는 "현재 금융지주 이사회가 교수 등 특정 직업집단 중심으로 편중돼 있다"며 "JP모건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의 경우 경쟁사 출신이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고 학계 인사는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기관 지배구조를 '부패한 이너서클'에 비유한 것과 유사한 맥락에서 그는 '골동품'이라는 표현을 썼다. "(금융지주) 회장들이 연임을 거듭하다 보니 차세대 후보들이 6년씩 기다리게 되고, 결국 그들도 에이징이 와서 골동품이 된다"는 발언은 금융지주 입장에선 뼈아픈 지적이다.
감독당국 수장이 오죽했으면 JP모건까지 언급했을까. 그의 말대로 JP모건체이스 이사회는 금융전문가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경영자를 비롯해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인사들로 꾸려지는 게 확인된다. 경쟁사 출신 경영자나 다른 산업의 리더가 이사회에 합류하는 것도 글로벌 IB에선 흔한 일이다. 반면 우리나라 금융지주 이사회 구성을 보면 교수를 비롯한 학계 인사와 전직 관료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주주 추천 사외이사가 없는 금융지주도 허다하다. 물론 국내 대기업 이사회 구성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현장성과 전문성이 부족한 인사들이 이사회에 다수 포진하면 CEO 권한은 막강해지고, 이사회는 독립적 견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게 된다.
이 원장의 이런 발언은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는다. 금감원은 회장 선임과정에서 드러난 논란과 관련해 BNK금융지주에 대한 검사를 진행했다. 이 원장은 BNK금융 검사 결과에 따라 다른 금융지주에 대한 현장 검사로도 확대할 수 있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현장검사와 별개로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본격적으로 가동한다. TF는 금융지주 이사회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에 방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특정 직업군에 편중된 이사회 구성을 개선하고,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주주 추천 사외이사를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사회 의사결정과정에서 이해 상충을 최소화하는 장치도 마련될 전망이다.
당국의 제도개선 움직임에 더해 금융권의 자발적 노력은 필수다. 이사회가 권력자의 연임 욕망을 뒷받침하는 장식품이 아니라, CEO를 견제하고 소비자와 주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실질적 권력 균형 장치로 거듭나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지배구조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한다면 국내 금융산업은 신뢰와 경쟁력 모두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지금처럼 폐쇄적이고 균질한 이사회 구조로는 복잡해지는 금융환경을 감당하기 어렵다. 이찬진 원장의 발언은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금융권이 미래의 불확실성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스스로 답을 내야 한다. (금융부장)
chhan@yna.co.kr
한창헌
chhan@yna.co.kr
금융용어사전
금융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