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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숙의 시선] 느린 '클로이드', 사라진 '볼리'…무서운 '아틀라스'

2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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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연합인포맥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CES 2026은 로봇산업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무대였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말처럼 피지컬 AI 시대가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한 현장이었다.

전시장의 화제는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였다.

이 질문 앞에서 홈로봇과 제조봇의 격차는 더욱 선명해졌다.

LG의 휴머노이드 로봇 '클로이드'는 느린 빨래 개기 시연으로 다소 어색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이번 CES에서 클로이드는 예상보다 큰 주목을 받았다. 속도는 느렸지만, 사람과 대화하고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은 단순한 쇼를 넘어 '홈로봇의 출발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집 안을 돌아다니는 로봇이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클로이드가 느리고 답답하다는 비판에 대해서 LG도 이를 숨기지 않았다. 류재철 LG전자 사장은 "내년이면 속도는 확연히 개선될 것"이라며 내년 실증에 나설 계획임을 밝혔다.

LG의 클로이드

[촬영: 윤영숙 기자]

반면, 한때 가정용 로봇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삼성전자의 '볼리(Ballie)'는 이번 CES에서 자취를 감췄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CES에서 AI 컴패니언 로봇 볼리의 상반기 출시 계획을 밝혔고, 가격검토 단계까지 갔지만, 올해 CES에서는 관련 언급이 전혀 없었다.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볼리 등 회사의 로봇 전략을 묻는 말에 "먼저 삼성전자의 생산거점에서 로봇을 우선 추진하고 여기서 쌓은 기술과 역량으로 B2B나 B2C 사업에 진출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산업용 로봇과 제조자동화에 우선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볼리 상용화 계획은 일단 접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노 사장은 레인보우로보틱스 인수 이후 협업을 통해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라며 "삼성의 제조업 역량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술이 일정 수준에 올라가면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지금부터 전략을 전면 수정해 제조봇부터 시작한다면, 홈로봇의 상용화는 제조봇보다 훨씬 뒤로 밀릴 가능성이 커 보였다.

CES 현장에서 만난 한 국내 중소 로봇 관련 기업 관계자는 홈로봇에 있어 "삼성은 판을 갈아엎기로 한 것으로 안다. 지금 상태로는 시장성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가정이라는 공간이 로봇에게 얼마나 까다로운 환경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삼성전자의 홈 AI 캠패니언 로봇 '볼리'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홈로봇의 한계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일의 부재'에 가깝다. 집안에서 로봇이 해야 할 일은 상당 부분 이미 가전이나 스마트폰이 대신하고 있다.

빨래나 청소, 요리 보조 같은 작업을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고 완전히 수행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클로이드가 오븐에 레토르트 식품을 데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음식다운 음식을 해내려면 아직 먼 느낌이었다. 여기에 불확실한 비용 대비 효용까지 고려하면 상용화의 문턱은 높아 보인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

[촬영: 윤영숙 기자]

이번 CES에서 가장 큰 놀라움을 안긴 로봇은 현대차가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였다. 시연을 지켜보는 내내 감탄과 함께 묘한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아틀라스는 무대 위를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걸어 다녔고,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목과 어깨, 허리, 손목 등 여러 관절을 360도로 회전시키는 동작은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인간의 움직임과 지나치게 닮았다는 점에서 쉽게 시선을 떼기 어려웠으며 로봇이 가져올 미래가 이미 현실이 되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아틀라스는 2년 뒤인 오는 2028년 실제 공장 현장에 배치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연간 3만대 로봇 양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아틀라스를 자동차 생산현장에 전격 투입할 계획까지 세워뒀다.

제조 현장은 로봇에게 명확한 '일'을 부여한다. 반복 작업, 인력 부족, 안전 문제라는 이유도 분명하다. 속도보다 안정성이 중요하고, 공간과 동선 역시 통제 가능하다. 무엇보다 로봇이 만들어내는 생산성 향상이 숫자로 증명된다. 반면 집은 변수가 많고 책임은 크며, 사용자는 냉정하다.

CES 2026은 이 차이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느리지만 첫걸음을 뗀 클로이드, 제조 현장에서 놀라운 진전을 보여준 아틀라스, 그리고 홈로봇을 접고 제조봇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삼성의 선택.

대한민국 로봇산업은 지금 '꿈의 크기'를 줄이는 대신 '현실의 깊이'를 파고들고 있다. 그리고 이 선택의 방향이 향후 로봇 시장의 승자를 가를 가능성이 크다. (산업부 윤영숙 차장)

ys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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