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미국의 반도체 관세 부과 움직임과 대만·한국을 둘러싼 협상 구도가 급변하면서 글로벌 반도체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연합인포맥스는 미국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글로벌 공급망과 한국 반도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짚는 한편 사상 최대 실적과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는 TSMC의 행보를 통해 앞으로의 경쟁구도의 변화를 살펴보고자합니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관세 부과를 전제로 한 협상 개시를 공식화하면서 국내 반도체 산업의 긴장감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전반에 대한 관세 확대 가능성을 담은 포고문을 전격 발표하자, 정부는 전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피에스케이, 동진쎄미켐, LX세미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등을 불러 긴급회의를 열고 대응 전략 점검에 나섰다.
한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지금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라며 "당장은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오늘 대만 발표가 나왔는데, 우리도 동일하게 적용될지 아닐지 구체적인 것은 나온 게 없다"라며 "지금은 상황을 지켜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포고문은 미국 상무부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진행한 안보 영향 조사 결과를 토대로, 반도체 품목 관세 부과와 함께 주요 생산국과의 협상을 병행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포고문에는 "선언일로부터 90일 이내에 협상 진행 상황을 보고하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어, 사실상 3개월 안에 반도체 관세 협상의 윤곽을 정리하겠다는 시한표로 해석된다.
정부와 업계가 긴장하는 이유는 이번 반도체 관세가 단순한 통상이슈를 넘어 미국 내 생산 확대를 강하게 압박하는 정책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는 미국이 전 세계 반도체 소비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지만, 자급률은 10% 수준에 불과하다며 해외 공급망 의존을 문제 삼았다.
이에 따라 관세 부과와 함께 미국 내 반도체 생산·공급망 특정 분야에 투자하는 기업에 우대 관세를 적용하는 '관세 상계 프로그램'을 병행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구상은 최근 미국과 대만 간 반도체 관세 협상에서 구체화됐다. 대만 기업이 미국에 신규 반도체 생산시설을 건설할 경우, 공장 건설 기간 동안은 생산능력의 2.5배, 완공 이후에는 1.5배까지 무관세로 수입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사실상 투자 규모와 속도에 따라 관세 부담을 차등 적용하겠다는 구조로 풀이된다.
한국은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에서 반도체 관세에 대해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약속받았지만, 당시에는 구체적인 관세 틀이 마련되지 않아 원칙적 문구에 그쳤다. 이제 미국이 대만을 기준점으로 삼아 실질적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이 커져, 한국은 이를 토대로 다시 협상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와 업계가 미·대만 협상 결과를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대만은 전날 미국과 15%의 상호관세율과 2천500억달러 규모의 신규 직접투자에 합의했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 6개를 완공했거나 증설할 예정인데, 이에 더해 반도체 공장 5개를 미국과의 무역협정에 따라 추가 증설할 계획이다.
한국은 정부 차원의 포괄적 투자 약속과 함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민간 기업이 개별적으로 미국 투자를 진행해 왔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 투자를 370억달러 규모로 확대했고,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AI 메모리용 첨단 패키징 기지를 건설 중이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한국에도 추가적인 반도체 생산기지 확대를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형수 HSL파트너스 대표는 "(당초) 미국내 투자를 할 경우 관세를 깍아주기로했지만, 진행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시 관세를 높일 수 있어보여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기업들의 미국 투자 확대를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라며 "그러나 환율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추가 투자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를 미국에 잘 설득해나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현 수준에서는 1단계 25% 관세가 첨단 반도체에 국한돼 있고, 관세가 적용되지 않은 예외도 있어 당장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단계 관세에서는 세부조건이 최첨단 칩에 관세를 부과하는 거라 범위가 큰 관세라고 볼 수 없다"라며 "더구나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게 해주기로한 만큼 대만이 15%에 합의해 그 수준에서 합의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시기상으로 7월쯤이 될 가능성이 높은 2단계 관세에서는 메모리까지 들어갈지 여부가 중요한 부문이며, 이때는 좀 긴장을 해야할 것 같다"라고 했다.
백악관은 앞서 14일 상무부가 발표한 반도체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 관세가 '1단계 조치'에 해당한다며 협상 결과에 따라 추가 발표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향후 협상 결과가 한국에 불리하게 전개될 경우, 국내 반도체 기업의 대미 수출 비용 증가와 가격 경쟁력 약화는 불가피하다. 반대로 대만과 유사한 수준의 관세 면제를 확보한다면, 미국 시장 내 입지는 유지할 수 있지만 투자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앞으로 남은 협상은 관세 부담과 투자 확대 사이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전략적 선택을 강제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성열 산업통상부 산업성장실장이 1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대회의실에서 미국 반도체 품목관세 관련 민관합동 긴급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6.01.15 [산업통상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ysyoon@yna.co.kr
윤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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