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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지금] "실버야 좀 멈춰라"…'킬 스위치' 연타하는 CME

2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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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연합인포맥스) '킬 스위치(Kill Switch)'는 일상적 방식으론 멈추기 힘든 상황에서 작동을 강제 종료시키는 안전 장치다. 금융시장에선 극도로 커진 시장 변동성을 진정시키기 위해 거래소가 도입하는 조치를 킬 스위치라고 부른다.

세계 최대 파생상품 거래소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최근 은 선물 시장에서 킬 스위치를 찾는 빈도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자 시장에선 불평과 조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CME는 작년 12월부터 은 선물시장에서 말 그대로 킬 스위치를 '연타'하고 있다. 작년 12월에만 3번이나 은 선물 증거금을 가파르게 올렸고 언론을 통해서도 이같은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CME는 올해 들어서도 슬그머니 은 선물 증거금을 다섯 번이나 더 인상했다. 전례 없는 속도다. 은 5,000온스당 증거금은 지난 2일 2만7천500달러로 인상된 후 5일에 3만250달러, 7일에는 3만2천500달러가 됐고 9일에는 3만5천500달러까지 치솟았다.

7일 인상 때는 '불 끄러 나온 소방수'라는 비판과 조롱이 시장과 소셜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확산됐다. 9일 인상은 은 선물 가격이 80달러마저 돌파하자 다급하게 나온 조치다.

그럼에도 은 선물 가격이 온스당 90달러 선마저 상향 돌파하자 CME는 13일에 급기야 증거금 인상 체계 자체를 변경해버렸다. 기존에는 증거금에 고정액을 적용했으나 비율제로 전환하며 증거금율을 계약당 가치의 9%로 책정했다.

9% 비율제 기준으로 보면 현재 온스당 90달러 수준인 은 선물의 증거금은 4만500달러에 이른다. 작년 12월 29일 기준 증거금 2만5천달러와 비교하면 불과 보름 만에 증거금 부담이 60% 이상 폭증했다. 그 사이 은 선물가격 상승률이 20%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과도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CME가 킬 스위치를 이처럼 연타한 데는 투자자 보호라는 명목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보호'하려는 투자자는 결국 개인이나 일반 투자기관이 아니라 월가의 대형 은행이라는 의구심이 커지는 중이다.

지난 주말 미국 소셜미디어에선 일부 미국 대형 은행이 은 선물에 대규모 숏 포지션을 갖고 있으며 은 선물 가격이 100달러 선마저 넘어서면 잠재 손실 확대로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이 확산됐다.

특히 시장에선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씨티그룹의 순매도(net short) 포지션 규모가 위험 수위를 넘어선 게 아니냐는 경계감이 나온다. 온라인에 확산된 게시글에선 BofA의 순매도 포지션이 약 10억온스, 씨티그룹은 약 34억온스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전 세계 연간 은 광산 생산량이 약 8억온스라는 점에서 두 기관의 추정 규모는 상당히 위협적이다.

소셜미디어에 확산되는 월가 은행의 숏 포지션 추정치

[출처 : 노리밋(NoLimit) 엑스 계정]

CME가 급격히 증거금을 올린 배경에 숏 포지션으로 '물린' 대형 은행이 있다는 의심은 이같은 흐름에서 비론된다. 증거금이 대폭 인상되면 기존의 롱 포지션 투자자는 증거금을 추가 납입하기 어려울 경우 포지션을 청산할 수밖에 없다. 이는 선물 매도로 이어지고 결국 대형 은행도 한숨 돌릴 수 있게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CME가 극단적으로 킬 스위치를 연타하더라도 은 가격이 쉽게 진정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무엇보다 실물 은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실물 은(physical silver)과 종이 은(paper silver)의 스프레드(가격 차이)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전 세계적으로 은 시장은 크게 실물 은을 거래하는 상하이금거래소(SGE)와 종이 은 위주인 뉴욕 금속선물거래소(COMEX) 및 런던귀금속시장협회(LBMA)로 나뉜다.

종이 은 시장은 실물 은을 거래하지 않고 서류상으로만 은을 거래하고 차익을 결제하는 선물 시장이다. 주로 투기적 목적이나 헤지 목적의 거래자들이 참여하는 시장이다. 반면 SGE는 실수요가 있는 전방 산업 종사자들이 실물 은을 거래하는 시장이다.

종이 은에 비해 실물 은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이른바 '상하이 은 프리미엄'은 작년부터 빠르게 뛰었다. 상하이에서 거래되는 실물 은 가격이 100달러마저 돌파하면서 상하이 은 프리미엄도 현재 8~10달러에 달한다.

상하이 실물 은 가격 추이

[출처 : 상하이금거래소]

실물 은 가격이 급등하는 원인으로 ▲중국의 정제은 수출 통제 강화 ▲인공지능(AI) 산업의 급성장 등이 꼽히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올해 1월 1일부터 은을 전략 물자로 분류하고 수출 면허 제도를 도입했다. 중국은 전 세계 은의 정련 및 유통의 60~70%를 장악하고 있는 만큼 중국 정부의 공급 통제는 은 시장에 충격이 된다.

AI 산업이 인프라 구축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구리와 함께 은 수요가 폭발한 점도 실물 은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고성능 서버와 데이터 센터의 전력 관리, 신호 전달 체계에 은이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은의 품귀를 촉발하는 요소다.

이같은 배경 때문에 상하이 실물 은 시장에선 백워데이션이 나타나고 있다. 산업용 수요자들이 미래의 가격 하락을 기대하기보단 당장 인프라를 깔고 공장을 돌리기 위해 실물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종이 은은 말그대로 종이이기 때문에 결국 실물 은의 가격 추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상하이 은 프리미엄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게 시장의 습성인 만큼 CME가 증거금을 급격히 올려도 월가의 근심은 지워지기 힘든 실정이다. (진정호 뉴욕특파원)

jhjin@yna.co.kr

진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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