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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권의 쿰파니스] '억울한' 이창용

2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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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답하는 이창용 한은 총재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1.15 [공동취재] cityboy@yna.co.kr

(서울=연합인포맥스) '순교자의 심정'. 정부와 한국은행 관계자들을 만나면 최근 이창용 한은 총재를 두고 공통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임기를 석 달여 앞두고 있지만, 이 총재는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업무에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 퇴근 뒤에도 늦은 밤까지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컨퍼런스콜을 진행하고, 금융시장 상황을 수시로 체크하고 의견을 교환한다고 한다. 열심히 공부하던 학자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한 모습이라고 했다. 한 당국자는 "연임을 하느냐 마느냐 얘기도 나오지만, 정말 학자적 마인드로 마지막까지 국가를 위해서 당신이 뭘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시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순교자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창용 총재가 최근 단단히 화가 났다. 원망과 울분 정도가 아니라 분노 수준이다. 그래도 꾹꾹 눌러 참고 있는 것 같다. 웃음기는 사라졌다. '아재 개그' 같은 농담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총재가 뭘 얘기해도 소위 '말발'이 잘 먹히지 않는다. 대신 비판과 비난은 커지고 있다. 이 총재 입장에서는 '모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 총재는 적어도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선 '신뢰'의 표본처럼 평가받는 몇 안 되는 인사다. 이 총재의 한마디 한마디는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채권시장에서는 사실상 '종교'와도 같다(시장참가자의 평가).

이 총재는 지난 15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최근에 가장 가슴 아프고, 달리 표현하면 화도 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참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할 수 있나 라는 것이다"라며 운을 뗐다. 최근 정부와 한은이 시중에 유동성을 많이 풀어서 환율과 부동산을 끌어올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를 폭발하게 한 트리거와 같은 질문이었다. 이 총재는 "저 이 대답 준비해 왔어요"라며 단단히 벼르고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이처럼 이 총재를 가장 화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한은 책임론'이었다. 시중에 유동성이 늘었으니 부동산 가격도 뛰고 환율도 오른 것 아니냐는 아주 '원초적인' 추론에서 시작된 것이 어느새 한은이 죄다 책임을 뒤집어써야 할 상황까지 몰린 것이다. 이 총재는 "제가 취임한 이후 지난 3년간 M2(광의통화)는 늘지 않았고 늘어나는 추세를 스톱 시켰다"고 했다. "데이터가 안 맞는 얘기를 하는데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당황스럽다"면서 "(한은이 돈을 풀어 환율을 올렸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라고도 말했다.

이 총재의 말처럼 한은은 시중 유동성을 더 흡수했다. 돈 풀어서 집값 올리고 환율이 고공행진을 한다는 비판에 발끈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억울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그런데도 한은과 이 총재가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 선거가 다가오고 있어서다. 어느 정치인의 말처럼 선거철이 다가오면 다들 미친다고 하지 않나. 경제적 이론이나 데이터는 중요하지 않다. 더군다나 이 총재의 임기 종료와 연임을 둘러싼 전망이 혼재되면서 좋은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정부와 한은이 환율 고공행진의 이유를 데이터로 분석해 설명해도 먹히지 않는다. 정부가 수십억달러를 투입해 외환시장에 개입해도 떨어지면 끊임없이 사는 세력들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왜 그럴까. 이미 환율은 정치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부동산이 그랬던 것처럼. 현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측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불안정하고 환율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물가에도 악영향을 줘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나라 망해라 하고 기도하지는 않겠지만, 누군가에게 경제적 문제의 책임을 물어야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현재 1,500원에 육박한 환율이 단박에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와 한은이 온갖 고육책을 마련해 시장에 내놓더라도 그 영향은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왜, 그 반대 심리를 지배하는 정치적 캠페인이 고도로 진행되고 있어서다. 성장률, 금리 차이, 유동성, 재정 확대 등 경제적 용어들이 동원돼 환율 고공행진 이유를 설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만있어야 하는 것인가. 사실 외환 당국에 아쉬움이 있다. 좀 더 과감해졌으면 한다. 작년 말 강력한 개입을 통해 50원 이상 환율을 떨어뜨린 이후 너무 방관한 것은 아닌가. 시장에서는 '당국 경계'라는 말을 자주 쓴다. 진짜 당국이 움직일까를 테스트해 본다. 그런데 경계감으로 끝나는 것 같다. 슬슬 건드려보니 뚫린다. 단기간이지만 이런 경험이 쌓이면 과감해진다. 당국의 패도 대충 눈에 보인다. 고환율 상황은 또 지속한다. 다시 고환율 책임론은 부상한다. 반복되는 악순환이다. 끊을 때 끊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가 대표로 책임론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다. (경제부장)

pisces73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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