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기간 악용 상호주 확대되면 주주가치 훼손 더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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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자사주 강제 소각을 골자로 한 '제3차 상법 개정'이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증권가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법안 시행 전 주어지는 유예 기간이 기업들에게 자사주 소각을 회피하고 경영권을 방어할 '골든타임'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증권업계에서는 자사주를 주고받아 생기는 '상호주' 관계가 자사주 단순 매각이나 교환사채(EB)보다 주주가치 훼손이 더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3차 상법 개정안은 신규 취득 자사주는 1년, 기존 보유분은 1년 6개월(유예 6개월 포함) 내 소각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 유예 기간이 오히려 자사주 맞교환을 부추겨 한국 증시에 거대한 상호주 네트워크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소각하느니 친구 맺자"…'묻지마 맞교환' 급증
최근 기업들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앞두고 우호 세력 확보를 위해 자사주를 맞교환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자사주는 회사가 보유할 때는 의결권이 없지만 제3자에게 처분하는 순간 의결권이 되살아나는 점을 이용한 전형적인 경영권 방어 전략이다.
실제로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활발한 지분 섞기가 진행 중이다. 대웅은 최근 광동제약과 주식을 상호 교환한 데 이어 자사주를 현물출자 방식으로 처분해 유투바이오 지분을 확보했다.
광동제약 역시 휴메딕스, 동원시스템즈 등과 자사주를 맞교환하며 우호 지분을 늘렸다. 환인제약,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등도 유사한 방식으로 자사주를 처분했다.
사업적 연관성이 낮은 이종(異種) 기업 간의 교환도 눈에 띈다. 주류 기업인 무학은 자동차 부품사인 삼성공조와 41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맞교환했다.
두 회사의 공통점은 본사가 '창원'에 있다는 점뿐이었다. 완구 기업 오로라월드도 아웃도어 기업 동인기연, 교육 기업 대교와 잇따라 자사주를 교환했다.
시장에서는 이들 기업이 표면적으로 '전략적 제휴'를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상법 개정 전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서로의 경영권을 방어해주기 위한 '백기사 동맹'을 맺은 것으로 보고 있다.
◇상호주, EB보다 악성… "회사 자산으로 경영진 배 불리기"
증권가에서는 이러한 자사주 맞교환이 자사주를 기초로 한 교환사채(EB) 발행보다 주주가치 측면에서 더욱 악성이라고 평가한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유사한 구조인 EB는 발행 시 회사로 현금이 유입돼 신규 투자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재무적 투자자(FI)가 향후 차익 실현을 위해 주식을 매각하면 우호 지분의 성격도 자연스럽게 희석된다.
반면 자사주 맞교환은 실질적인 자금 유입이 없다. 기업 가치와는 무관하게 오직 지배주주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회사 자산인 주식을 서로의 금고로 옮겨 놓는 것에 불과하다.
이은정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경제개혁 리포트에서 "자기주식으로 경영진의 우호 지분을 만드는 것은 회사의 자산을 경영진의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며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日은 '카르텔'이라며 깨부수는데…한국은 역주행 우려
전문가들은 한국 시장이 일본 증시가 과거 겪었던 상호주의 덫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본 정부와 금융당국은 상호주 관행을 "기업 경영 능력을 훼손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강제 해소에 주력해왔다.
일본 금융청은 2023년 말 대형 손해보험 4사의 보험료 담합 사건을 조사하며 그 근본 원인으로 상호주를 지목했다. 기업 간 주식 보유가 경쟁을 저해하고 '봐주기식 계약'을 맺는 담합 구조를 고착화했다는 판단이다. 이에 금융청은 업무 개선 명령을 내렸고, 보험사들은 정책보유주식 전량 매각 방침을 밝혔다.
미즈호증권 역시 "상호주를 합리적 이유 없이 보유하면 중장기 성장 투자를 저해하고 자본 효율성을 악화시킨다"고 분석했다. 투자 수익률이 낮더라도 정책적 목적 때문에 주식을 계속 떠안고 있어야 하는 구조적 비효율을 꼬집은 것이다.
국내에서도 라이프자산운용이 KCC에 삼성물산 지분 유동화를 요구한 사례가 있다. KCC는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자사주를 넘겨받아 현재까지 보유 중인데, 이를 대표적인 자본 비효율 사례로 지적한 셈이다. 일본은 이 같은 구태를 청산하며 증시 개혁에 성공한 반면, 한국은 개정 상법의 허점을 이용해 오히려 상호주를 늘리는 방향으로 역행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자사주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법안이지만, 유예 기간 탓에 빠져나갈 구멍만 만들어줄 수 있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유예기간 내 '꼼수'를 막기 위한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은정 연구위원은 리포트에서 자사주 처분 시 특정인(우호 세력)에게 처분하지 못하도록 처분 방법을 제한하거나 공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상호주가 형성될 경우 ▲구체적인 형성 이유와 처분 계획 ▲관련 계약 내용을 공시하고 ▲주주총회나 지배구조보고서를 통해 상호주 보유 현황을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kslee2@yna.co.kr
이규선
ks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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