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자본시장에서 주요 경영진의 자사 주식 매도는 흔히 '악재'로 통한다. 특히나 최고경영자(CEO)가 매매 주체라면 파급력이 커진다. 해외에서는 이를 매개로 주가 방향성이 급선회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누구보다 내부 사정에 정통한 수장이 주식을 팔았다면, 기업가치가 고점에 도달했다는 강력한 부정적 시그널로 읽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 에너지안보의 최후 보루이자 K-일렉트릭(전력)의 선봉인 한국전력[015760]에서 이런 사례가 발생했다.
23일 한전이 내놓은 임원·주요주주특정증권등소유상황보고서를 보면 김동철 한전 사장은 최근 3개월간 보유 자사주식 중 총 300주를 처분했다. 작년 11월에 200주를 정리한 데 이어 새해 들어서 100주를 추가로 팔았다. 합산 매도 규모가 총 1천450만원가량이다. 이로써 김 사장의 잔존 주식은 500주로 축소됐다.
김 사장은 취임 약 6개월 후인 지난 2024년 3월에 처음으로 한전 주식을 담았다. 400주를 먼저 사들였다가, 바로 다음 날 '더블'로 채웠다.
[출처: 한국전력 공시 바탕 인포그래픽 제작]
당시 한전의 재무상황이 심각했다. 코로나를 거치며 급등한 국제 원자재 가격을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해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2021년 2분기부터 연속 영업 적자에, 2022년에만 연간 적자가 33조원에 육박했다.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주가는 21세기 들어 최저점을 향해갔다.
국가 경제의 혈맥이 부실화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김 사장은 취임 초부터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진두지휘했다.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으며 한전 직원들도 제 살 깎기에 헌신했다. 그 결과 한전은 거대한 적자의 늪을 지나 에너지 전환의 프론티어로서 위상을 회복하고 있다. 경영 효율화를 발판으로 최근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역설적으로 김동철 사장은 주가 상승으로 인해 주식을 처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상 고위 공직자의 직무 관련 주식 보유 한도를 3천만원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보유 주식의 평가액을 3천만원으로 맞추기 위해 순차적으로 주식을 팔았다.
CEO의 주식 매도를 한전의 '피크아웃'(하락세 전환)으로 보지 않고 시장이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증권사 관계자는 "규제 때문에 주식을 팔아야 할 정도로 주가를 관리했다는 것은 공기업 CEO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퍼포먼스"라고 전했다.
김 사장의 이번 행보는 공공성과 수익성의 외줄타기를 수행하는 공공기관장들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개인의 투자 수익보다 법적 의무를 우선시하면서도, 경영 성과를 주가라는 객관적 지표로 입증해 냈다.
[출처: 한국전력]
김 사장은 취임식에서 한전 사장이 마지막 공직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정치인 출신 CEO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일선에서 움직였다. 최근에는 CES에 단독관을 최초로 열며, 국내 전력 판매에 매몰된 매출 구조를 해외 진출로 타파하려는 시도까지 단행했다.
아직 한전의 정상화가 마무리된 건 아니다. AI(인공지능) 시대 미래 전력망 구축에 따른 대규모 투자와 재무적 안정성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한전이 앞으로 압도적 기술 해자를 갖춘 에너지 거인으로 변모하길 기대해본다. (산업부 이재헌 기자)
jhlee2@yna.co.kr
이재헌
jh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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