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극작가 유진 글래드스톤 오닐의 사후에 발표된, 그러면서도 그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희곡이다. 유진 오닐의 비극적 가정사를 다룬 자전적인 내용이면서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불신, 단절, 고통을 가감 없이 드러낸 작품으로 유명하다. 극의 시작은 더 없이 화목한 전형적인 미국 가정의 모습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는 완고하고 인색하며, 어머니는 외로움에 지친 모르핀 중독자, 큰아들은 탕자, 둘째 아들은 결핵환자인 진흙탕같은 모습이 드러난다.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코스피 지수가 장중 사상 처음으로 5,019.54를 기록한 22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코스피 지수 5,000선 돌파를 축하하고 있다. 2026.1.22 yatoya@yna.co.kr
우리 수출산업이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하면서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음에도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달러-원 환율을 두고 국내 개인투자자의 해외투자를 탓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국내 증시가 꿈의 5,000선을 돌파했음에도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며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 이른바 서학 개미는 요지부동이다. 이달 20일 기준 한국예탁결제원에 보관 중인 개인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액은 1천718억 달러(한화 약 253조원)이다. 한 달 전인 12월보다 83억 달러가 늘었고 1년 전인 1월 1천136억달러 수준이었던 것과 견줘보면 600억 달러가량이 더 많다. 정부는 미국 주식을 청산하고 국내 증시로 복귀하는 이들에게는 양도소득세 면제 혜택 등을 주겠다고 유혹하고 있지만 세율을 능가하는 투자수익을 거둔 이들이 그렇게 쉽게 마음을 돌릴지는 미지수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 사진]
국내 코스피지수는 지난 2000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17년 동안 1,800~2,200선 내외의 박스권에 갇혀 있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지배구조 문제였다. 주식회사이면서도 다수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는 경영권을 틀어쥔 소수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기능하는 모순적인 상황은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를 외면하는 배경이 됐다. 새삼 어디라고 말할 것도 없다. 어떤 기업은 단 한 명의 주주를 위해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사채(CB)를 몰아줬고 어떤 기업은 유망한 사업부문을 분할, 상장하면서 다수의 소액주주가 가져갈 몫을 가로챘다. 어떤 기업은 회삿돈을 횡령해 선물 투자한 사람을 여전히 총수로 받들고 있다.
주가지수가 역대 최고라는 화려한 기록을 쌓아 올리고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유진 오닐 희곡에 나오는 타이론 일가처럼 군데군데 곪고 상처투성이인 셈이다. 두 차례에 걸친 상법 개정을 통해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를 선진화하고 있다지만 회삿돈으로 취득한 자사주를 바탕으로 교환사채를 발행하거나 성격이 비슷한 자회사를 중복으로 상장하려 하고 있다. 마치 모르핀을 끊지 못하는 타이런 일가의 안주인 메리처럼. 오닐의 희곡에서 메리는 화려했던 결혼 전, 그리고 싸구려 호텔을 전전했던 결혼 뒤의 비참함 등 극단적인 환경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모르핀에 취하는 방향으로 도피해버린다. 그런 상황에서도 가장인 타이런은 근검절약이 최고라는 과거의 미덕에 집착해 가족의 치료를 위해 써야 할 비용까지도 아까워한다.
인공지능(AI)이라는 성큼 다가온 미래산업, 여기에 힘입어 치솟은 주가지수에 취해 우리 기업 생태계가 지닌 문제점들을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언젠가 바닷가의 썰물이 지듯 AI 거품이 물러나면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가 지속가능한 투자 여부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아직 시간이 있다. 3차 상법 개정 등 정치권의 행보보다 더 빨리 기업 스스로 지배구조를 고민하고 이를 바꿔 나가면 어떨까. (산업부장)
spnam@yna.co.kr
남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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