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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문성의 다른시각] 돈풀기의 역습과 장기금리의 귀환

2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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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버넘의 저서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원제: Mean Markets and Lizard Brains: How to Profit from the New Science of Irrationality, 2005년 1월 출간)에는 다음과 같이 채권업계 종사자의 시선을 끄는 대목이 있다.

"1993년 하버드대학교의 그레고리 맨큐 교수는 거시경제학 수업에서 '채권은 겁쟁이들을 위한 투자 상품이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채권시장의 호황은 거의 끝났다. 10년 만기 국채의 금리가 4%인데 여기서 어디로 더 갈 수 있겠는가? 결국 이런 환경에서 채권은 겁쟁이들을 위한 투자 상품이 아니라,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 돈풀기에 대한 대중적 오해와 시장의 실체

'돈을 푼다', '돈이 휴지 된다'는 표현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팬데믹 시기와 비교해도 더 흔하게 사용되는 느낌이다. 환율과 일부 자산 가격이 오르니 이를 두고 '정부와 한은이 돈을 많이 푸니까 돈이 휴지가 돼서 그런 것이다'라고 후행적인 해석을 덧붙이는 식이다.

주요국의 재정적자가 지속되고 정부 지출이 통화량 증가의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돈풀기'라는 표현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리가 곧 '돈의 값'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채권시장은 돈값이 비싸지는 공포에 직면해 있다. 초과 저축이 사라진 상황에서 자꾸만 오르는 금리는 '돈이 휴지 된다'는 대중적 인식과는 정반대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 시장의 변화: 소극적 재정에서 적극적 투자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팬데믹 이전까지 재정정책은 소극적이고 기업들의 설비투자도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미중 갈등 속에서 인공지능(AI) 연관산업과 방위 산업에 막대한 투자가 지속되고 있으며, 정부 또한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투자성과가 기대되는 주식시장은 환호하고, 고정수익에 머무는 채권시장은 외면받는 흐름이 이어지는 배경이다. 3~4%의 수익을 확정 짓는 채권을 택하는 이들이 과거 맨큐 교수의 지적처럼 '겁쟁이' 소릴 들을법한 환경이다.

하지만 자본의 함수는 선형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지출 및 민간투자의 확대 → 주가와 금리 동반 상승'의 진행은 어느 임계점에서 꺾이기 마련이다. 미국과 일본의 장기금리 레벨이 증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시그널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채권시장에서는 돈이 이렇게 부족한데, 언제까지 증시로만 돈이 갈 수 있겠느냐는 겁쟁이들의 외침이기도 하다.

최근 장기금리의 움직임은 단순한 머니무브(채권에서 주식으로의 자금 이동)를 넘어선다. 관세 정책에 가려져 있던 인플레이션 위험이 대규모 투자와 병목현상으로 인해 재발할 수 있다는 근심을 서서히 반영하는 듯한 모습이다.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 대만은 물론, 브라질과 남아공 같은 원자재 국가의 증시가 강세를 보이고 에너지·소재 섹터가 아웃퍼폼하는 현상은 이러한 인플레이션 우려를 뒷받침한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취임 초부터 국채 10년물 금리 안정을 주요 정책 지표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 정부의 유가 및 주거비 안정 노력은 2025년 장기금리 안정과 증시 상승을 견인했고, 시장은 '연준의 금리 인하와 달러 약세'를 낙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우려가 꾸준히 장기금리에 투영되어 시장이 '이렇게 높은 금리에도 채권을 사지 않겠다'는 거부 반응을 보인다면 상황은 반전된다. 이 경우 돈풀기는 더 이상 자산 가격 상승의 동력이 아니라, 하락을 촉발하는 뇌관이 될 것이다.

테리 버넘이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4%인데 여기서 더 내려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던 2004~2005년은 중국의 산업화가 전 세계 원자재를 빨아들이며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을 일으켰던 시기다. AI 투자 붐의 강도가 그에 견줄만한 것인지는 지켜봐야겠으나, 지정학적 병목현상과 안보 부담은 그때보다 더욱 비우호적인 상황이다. 그의 표현대로 이런 환경에서 채권은 겁쟁이들이 아닌,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는 자들의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

(배문성 라이프자산운용 이사)

신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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