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국시간으로 지난 24일 새벽, 글로벌 환시에서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환시 개입 실무를 담당하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주요 은행을 상대로 달러-엔 환율 수준을 묻는 '레이트 체크(rate check)'를 실시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레이트 체크'란 환시 개입을 실시하는 중앙은행 등이 시장 참가자에게 환율 시세를 조회하는 것을 말한다. 환율 변동성 억제를 위한 개입을 전제로 중앙은행이 매매 주문을 내면서 그 시점의 매도가와 매수가를 조회한다.
매매를 이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실개입이 되지만 '레이트 체크'의 경우 중앙은행이 낫띵(nothing·취소)이라고 전해 실제 거래는 캔슬된다.
단순한 정보교환이 아니라 실제로 주문을 낸다는 점에서 평상시 이뤄지는 시세 모니터링, 즉 히어링(hearing)과는 구분된다.
보통 레이트 체크는 실개입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인식되는데, 일본은행(BOJ)이 단독 개입을 위해 연준에 위탁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일본과의 공조 개입을 위해 나선 것 아니냐는 인식이 확산됐다.
뉴욕 연은의 레이트 체크가 미국 재무부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소문이 이 같은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양측은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았지만, 일본 재무성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사이에 모종의 합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딜러들 사이에서 돌았다.
레이트 체크의 효과는 상당했다. 외환보유액이라는 제약이 걸려있는 일본 당국이 아닌 미국 당국이 나서게 되는 것이라면, 이론적으로 달러를 무제한적으로 팔 수 있기 때문이다.
23일 오후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통화정책 결정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연 직후 159엔까지 치솟았던 달러-엔 환율은 레이트 체크 소식 이후 155엔으로 굴러떨어졌고 이번 주 152엔까지 하락(엔화 강세)했다.
시장 참가자들은 미국이 이례적으로 움직인 이유에 주목하고 있다. 미·일 현지 매체와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당국이 등판한 진정한 목적이 '미국 국채'에 있다고 본다. 미국이 자국 국채시장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는 해석이다.
이번 '레이트 체크'가 그린란드를 둘러싼 긴장 고조로 트럼프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만과 불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그린란드 합병 의지를 재차 강조하고 유럽 국가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자 덴마크 학자·교사 연기금인 아카데미커펜션은 약 1억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 보유분을 이달 말까지 전부 매각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웨덴 최대 연기금인 알렉타도 이미 보유하고 있던 미국 국채 대부분을 팔았다고 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일본 엔화 약세는 미국에 상당한 부담이 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일본 외환당국이 단독으로 엔화 매수·달러 매도 개입에 나서면 그 과정에서 달러 매도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은 보유한 미국 국채를 처분해야 한다. 이는 미국 국채금리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 현재 일본은 세계 1위의 미국 국채 보유국으로, 1조1천억달러가 넘는 미국 국채를 가지고 있다.
그린란드 갈등과 유럽 연기금의 미국 국채 처분 이슈가 불거졌을 당시 다카이치 정부의 재정 건전성 우려로 일본 초장기 국채금리가 폭등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도 미국이 나선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다보스 포럼에 참석했던 베선트 장관은 미국 국채금리 상승이 그린란드 사태로 인한 '셀 아메리카' 때문이 아니라 "6시그마급 변동이 발생한 일본 10년물 국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오안다증권은 "미국 재무장관이 공적인 장소에서, 통계학적으로는 약 5억회 중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 수준의 '초(超) 이상사태'가 일본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단언한 것은 그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일본은행이 당장 자국 국채 매입에 나서기 어렵고 미국도 일본 채권시장에 직접 개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본 국채 변동성을 더욱 키울 소지가 있는 엔화 약세부터 저지하려 했을 것이란 시각이다.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 물가 상승, 일본은행 금리 인상, 일본 국채금리 추가 상승을 초래할 수 있고, 이 논리의 근거한 투기세력이 선제적으로 기승을 부릴 수 있다.
미국이 나선 또 다른 이유로 트럼프 정부가 제조업 및 수출 활성화를 위해 달러화 가치를 전반적으로, 특히 아시아 통화 대비 약세로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원화가 그랬듯이 아시아 통화가 엔화 약세에 점점 더 연동하게 되면 미국의 제조업 활성화 목표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 트럼프는 27일 아이오와주 방문길에 기자들과 만나 최근 달러 하락에 대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며 "(중국과 일본은)항상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하려 한다"고 말해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했다. 트럼프 발언 이후 달러 지수는 95까지 더욱 추락해 2022년 초 이후 최저 수준으로 밀렸다.
이제 시장의 남은 관심은 엔화가 드디어 추세전환을 할 것인지, 향후 되돌림이 나타났을 때 미일 양국이 실제 공조에 나설지일 것이다. 이 부분은 전문가들도 견해가 갈린다. 최근 엔화 약세가 미국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엔화 강세(달러 약세)가 마냥 미국에 이익이 되는 상황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달러 약세는 미국 생활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데, 이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어포더빌러티 위기(생활비 등 구매력 위기)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 지지율 추락에 시달리는 트럼프가 자국 물가 상승 요인이 오래 이어지는 상황을 좌시할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수입 물가(식품·연료 제외)는 지난 11월 전년 대비 0.9% 상승해 8개월 만에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는 향후 엔화 가치가 다시 떨어져도 과도한 달러 약세를 초래하는 미·일 공조 '실개입'이 나오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로도 꼽힌다. 과도한 달러 약세는 '셀 아메리카' 혹은 탈달러 논란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또 큰 폭의 엔화 강세는 엔 캐리 트레이드의 매력을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미국 증시 하락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인 마이클 버리도 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될 경우 자금 흐름 방향에 상당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며 "미국 금융시장에 미칠 여파를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여러 국가는커녕 한 국가조차도 어느 방향의 통화가치 움직임이 유리한지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복잡한 역학에 환율 방향을 점치는 일이 여느 때보다 어려워지고 있다. (국제경제부장)
문정현
jh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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