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R 0.5 미만 700개…지배주주·이사회 장벽에 적대적 M&A도 어려워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한국 주식시장이 시가총액 규모에서 '경제 강국' 독일을 추월했다.
하지만 웃을 수만은 없다. 몸집(시총)은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지만, 상장사 수가 기형적으로 많은 '저효율·비만형' 구조 탓에 개별 기업의 가치는 턱없이 낮게 평가받고 있어서다.
29일 금융투자업계와 세계거래소연맹(WFE)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 증시(코스피+코스닥) 시가총액은 약 3조2천500억 달러를 기록하며 독일(약 3조2천200억 달러)을 넘어섰다. 대만에 이어 글로벌 '톱10' 규모다.
문제는 시장의 밀도다. 한국거래소 상장사 수는 2천674개로 독일(457개)의 5.8배에 달한다.
상장사는 많고 자금은 흩어지다 보니 개별 기업의 덩치는 왜소하다.
상장사 1곳당 평균 시가총액을 보면 독일이 70억 달러(약 9조8천억 원), 미국(NYSE)이 146억 달러(약 20조 원)에 달한다. 홍콩도 23억 달러(약 3조2천억 원)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은 12억 달러(약 1조6천억 원)에 불과하다. 한국 기업의 평균 가치는 독일의 6분의 1,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이며 홍콩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다품종 저품질' 시장의 원인으로 퇴출 기능의 마비를 꼽는다.
선진 시장은 진입 장벽이 낮은 만큼 퇴출도 자유롭다. 인수합병(M&A)이나 상장폐지를 통해 부실기업이 끊임없이 걸러진다.
실제로 지난 5년간 NYSE 상장사 수는 소폭 줄었고(-0.6%), 독일은 12.5%나 줄었다. 나스닥은 22.8% 증가했지만, 이는 우량 스타트업의 활발한 진입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 상장사 수는 17%나 급증했다. 한번 상장하면 결정적 사유가 없는 한, 영업손실이 지속돼도 수년씩 연명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러한 구조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으로 꼽히기도 한다. 한국 증시가 독일 시총을 추월했음에도,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10.6배에 머물러 독일 DAX 지수(16.5배)보다 35% 이상 저평가된 상태다.
순자산가치보다 낮게 평가되는 종목도 많다. 연합인포맥스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이하 종목은 1천400여 개에 달한다. 청산가치보다 절반 이상 싼 PBR 0.5배 이하 종목도 700여개다.
시장에서는 이처럼 저평가가 방치되고 퇴출이 어려운 원인으로 적대적 M&A, 이른바 '베어허그(Bear Hug)'가 작동하지 않는 환경을 지목한다.
선진국에서는 주가가 자산가치 대비 현저히 낮을 경우 경영권을 인수하겠다는 적극적인 공개 매수 제안(베어허그)이 들어와 자진 상장폐지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지배주주 지분율이 과도하게 높은 데다, 외부 세력이 지분을 확보해 대주주가 되더라도 기존 이사회 진입이 쉽지 않다.
경영권 교체 위협이 없다 보니 기업들이 주가를 부양할 유인이 없고 저PBR 상태가 만성적으로 굳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퇴출 기준을 대폭 강화해 시장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당장 시총 150억원을 밑도는 코스닥 기업은 즉시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이후 90일간의 유예기간 동안 10거래일 연속 또는 누적 30일 이상 시가총액 150억원 이상을 회복하지 못하면 상폐된다.
내년에는 이 기준이 200억원, 내후년 300억원으로 매년 상향된다.
매출액 요건 역시 30억원 수준에서 내년 50억원, 내후년 75억원으로 높아진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거버넌스 개혁에 성공하면 코스피가 6,000~7,000까지 도달할 잠재력이 있다"면서도 "개혁이 후퇴해 반도체 사이클 둔화와 겹칠 경우 3,500선까지 급락할 위험도 상존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코스닥에 대한 인위적 부양책은 나중에 큰 후유증을 남길 것"이라며 "코스닥 펀더멘털이 떨어지고 밸류에이션이 이미 높은 상황에서 시장을 살리는 길은 정치적인 부담이 되더라도 과감하게 부실기업을 빨리 퇴출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WFE, 연합인포맥스
kslee2@yna.co.kr
이규선
ks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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