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2026년 스위스 다보스의 설원은 예년과 같았지만, 그 위를 흐르는 공기는 섬뜩할 정도로 달랐다. 다보스 포럼(WEF) 현장은 세계 경제 문제를 다루는 과거의 통념과 달리 지정학 갈등과 안보가 중요 화두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참석 전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덴마크령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가능성까지 시사하는 위협적인 발언을 했다. 그야말로 총과 대포로 남의 땅을 빼앗는 19세기 제국주의의 귀환과 다름없는 풍경이다.
다보스 보고서는 2026년을 '전략적 경쟁의 시대(The Age of Strategic Competition)'로 규정하고 단기적으로는 지경학적 대결(Geoeconomic confrontation)을 가장 심각한 리스크로 꼽았다. 관세를 비롯한 경제적 수단이 무기화되고 있음을 다보스 보고서는 경고했다. 국가 간 무력 분쟁에 대한 우려도 컸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취임한 이후 세계정세는 급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지정학 갈등이 아니다. 경제 이익을 배후로 한 국가 간 대결이 본격화되고 있다. 제국주의 시절 국가가 상선을 호위하기 위해 군함을 띄웠다면 이제 국가는 기업 그 자체를 '군함'으로 징발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는 총성 없는 잔혹한 경제전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애플과 엔비디아, 엑손모빌 등 자국 기업들을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 세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칩을 팔지 말라", "미국 내에 공장을 지어라."고 기업들을 강하게 압박한다. 이를 거부하는 기업에 가해지는 것은 관세와 보조금 배제, 규제 강화 등 정책적 압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노리는 것은 지정학과 경제 이익이 합쳐진 대표적 사례다. 미국은 중국과 무역전쟁에서 희토류 등 중요 자원에서 취약점을 드러냈다. 중국이 희토류 정제·가공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어 공급이 차단될 경우 미국의 인공지능(AI)·방산 산업에 심각한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린란드에 묻힌 희토류 등 다양한 광물자원은 트럼프 행정부로선 놓칠 수 없는 보물창고다. 그린란드는 북극항로의 주요 거점이며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요충지라는 분석도 있다. 그린란드는 지경학적 중요성의 최고봉인 셈이다.
미국이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는 가운데 러시아와 중국은 아직 조용하지만, 이들도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 힘들다.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무기로 동유럽 국가와 유럽을 상대로 위협할 수 있다. 중국은 거대한 내수와 자원 및 공급망을 무기로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에 영향력을 넓힐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슈퍼파워' 미국의 1극 체제에서 벗어나 강대국들이 자기 영역권을 확장하는 다극 체제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 경제는 미주, 유럽, 아시아 등 지역별로 블록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지경학 변화는 금융시장의 가격변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헤지펀드의 대부 레이 달리오는 무역전쟁 이후의 시기를 자본 전쟁이라고 정의했다. 미국이 달러 패권을 무기로 적성국의 자산을 동결하고 금융망(SWIFT)을 차단하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글로벌 자본이 미국 국채 비중을 줄이고 '금'을 늘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안보 논리가 수익률 논리를 압도하며 자본의 흐름이 왜곡되고 있다.
미국의 그린란드 위협에 대항해 일각에선 유럽계 자본의 미 국채 비중 조정 가능성이 거론됐고,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하고 달러 가치가 하락하는 셀 아메리카 현상이 재현됐다. 이러한 금융시장 불안이 트럼프 행정부의 수위 조절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나온다.
세계 지형이 급변하는 가운데 우리의 처세도 중요해졌다. 한국은 기업을 '방패'로 내세우는 미·중식의 자본전쟁에 휘말리기보다 기술·자본·공급망에서 선택지를 넓히는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한 산업 구조를 완화하고, 반도체·배터리·에너지 등 핵심 분야에서는 동맹과 협력하되 최종 통제권은 스스로 쥐는 방향이 필요하다. 결국 한국의 대응은 진영 논리가 아니라 생존을 기준으로 한 실용적 지경학 전략이어야 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지 않도록 현명한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국제경제부 선임기자)
jang73@yna.co.kr
이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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