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권용욱 기자 = 케빈 워시가 새로운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후보에 지명되면서 제롬 파월 현 의장의 이사직 유지 여부가 더욱더 관심을 받게 됐다. 그가 이사직에 유지할 경우 연준 내부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30일(현지시간) 연준에 따르면 현재 연준 이사회는 현재 한 자리가 공석이다. 바로 이달 말 임기가 만료되는 스티븐 마이런 이사의 자리다. 마이런 이사는 후임자가 확정될 때까지 임시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지만, 해당 자리는 이미 새로운 이사 임명을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자리다.
총 7명의 연준 이사 가운데 현재 오바마 또는 바이든 행정부가 지명한 인사는 파월 의장을 비롯해 필립 제퍼슨, 마이클 바, 리사 쿡 등 네 명이다. 트럼프가 지명한 인사는 크리스토퍼 월러, 미셸 보우먼, 마이런 등 세 명이다.
최근 대법원은 작년에 해임 시도에 맞서 소송을 제기한 리사 쿡 연준 이사를 트럼프 대통령이 해임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정부 요청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파월 의장의 의장직 임기는 오는 5월 종료되지만, 연준 이사로서의 임기는 오는 2028년 1월 31일까지다.
연준 의장은 두 직책에 임명되는데, 4년 임기의 의장과 14년 임기의 이사다. 그동안 대부분의 의장은 의장 임기가 끝나면 이사직도 내놓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파월 의장이 관례대로 오는 5월 연준 의장과 이사직을 모두 물러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사회의 두 자리 공석을 확보하게 된다. 이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새로운 의장을 14년 임기의 이사 자리에 지명한 뒤 마이런 또는 새로운 인사를 이사로 지명할 수 있다.
전체 7명 가운데 5명이 '친 트럼프' 인사로 꾸려지는 셈이다.
만약 파월 의장이 이사로 남는다면, 정부가 손 쓸 수 있는 자리는 마이런의 자리 하나뿐이다. 이 경우 새 의장이 되는 워시 지명자가 이 자리에 들어가야 하며, 마이런은 물러나야 한다. 연준 의장이 바뀌지만, 전체 7명 이사 가운데 여전히 3명의 인사만 트럼프 영향력 안에 있게 되는 셈이다.
월가에서는 그동안의 관례를 고려할 때 파월 의장이 이사직에 남을 가능성은 크지 않았지만, 미 법무부의 대배심 소환을 계기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파월 의장은 그동안 이사직 유지 여부에 대한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그는 지난 28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금리 결정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5월 연준 의장직 임기 종료 후 이사직 잔여 임기를 지속할지를 묻는 말에 "그 사안에 대해 오늘 할 얘기가 없다"라고 답했다.
지난 수 차례의 FOMC 기자회견에서도 동일한 질문이 나왔지만, 파월 의장은 답변을 거부했다.
최근 파월 의장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 대형 변수가 발생했다. 그가 법무부로부터 대배심 소환장을 받은 일이다.
이달 초 파월 의장은 연준 청사 개보수에 대한 의회 증언과 관련해 법무부로부터 대배심 소환장과 형사 기소 위협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법무부의 이번 조사는 표면적으로는 연준 청사 개보수에 관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금리 인하 문제, 즉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거듭 요구해 온 금리 인하 속도를 높이기 위한 행정부의 압박 가운데 하나라고 파월 의장은 주장했다.
파월 의장은 연준에서 약 14년을 보냈고, 의장으로서 8년을 보냈다. 일흔을 넘긴 그가 공직 생활을 연장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대배심 소환장과 형사 기소 위협이 상황을 바꾸게 할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진단했다.
만일 암묵적이라 할지라도, 법무부 수사가 중단되는 조건으로 이사직을 사임하는 데 동의하는 것은 그가 지난 1년 간 맞서 온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정당화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도 법무부 조사가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파월 의장의 최종 퇴진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이 공들여 진행했던 노력이 그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무력화된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파월 의장에 대한 조사가 해결될 때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후임자를 인준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에 최상의 시나리오는 파월 의장이 의장직 임기 만료와 함께 연준을 떠나겠다고 공개적인 약속을 하는 것이다. 후임자 상원 인준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파월 의장의 명확한 입장이 없으면 행정부는 공석 발생 여부를 알 수 없어 두 번째 후보 지명을 계획할 수 없다.
파월 의장이 연준을 떠난다고 분명하게 밝히면, 정부는 두 명의 후보를 동시에 처리해 올봄 중으로 원하는 이사회 구성을 확정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향후 연준 이사회의 구성은 파월 의장의 결단에 달린 셈이다.
지난 1934년부터 1948년까지 재임한 매리너 에클스 이후 전임 의장이 이사로 잔류한 사례는 없다. 에클스는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새 의장을 선출한 뒤에도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이사회에 남았다. 그는 3년 후 금리 결정에 대한 백악관의 권한을 두고 트루먼 대통령과 격렬하게 충돌하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뒤 연준을 떠났다. 이 대결은 궁극적으로 연준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는 회고록을 통해 앨런 그린스펀은 업무에 대한 열정 때문에 지난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그를 의장으로 재임명하지 않았더라도 '거의 확실히' 연준 이사회에 남았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파월 의장의 상황은 에클스나 그린스펀과는 다르다. 그는 잔류 요청을 받지도 않았고, 직을 유지하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치지도 않았다.
지난 2018년부터 2024년까지 파월 의장의 고문을 지낸 존 파우스트는 "남아 있는 것이 정치적으로 비칠 텐데, 얻는 이득이 무엇이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다만, 그는 "만약 정부가 연준 위원들을 숙청하거나 금리 결정을 획책하는 등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려 한다면, 파월은 이를 막기 위해 이사회에 잔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ywkwon@yna.co.kr
권용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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