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송하린 기자 = 취업 시장에서는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치지만, 기업들은 정작 인재난에 시달리고 있다.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즉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허리급' 인재로만 채용 수요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경영 환경 변화와 자본시장 전반의 변동성 확대가 맞물리면서, 신입을 육성할 여력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사내에서 신입부터 키워온 과·차장급 인재들마저 더 나은 보상과 기회를 찾아 떠나면서 허리급 인재 공백은 업계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용주 4분의 3이 '인재난'…80년대생이 부족하다
6일 글로벌 채용 대행사 맨파워그룹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용주의 4분의 3이 필요한 인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에는 같은 응답을 한 고용주가 36%에 불과했다.
인재난의 배경으로는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와 함께, 자본시장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가 꼽힌다.
국내 금융투자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임원급인 1960~1970년대생 인력은 상대적으로 두터운 반면 1980~1990년대생 허리급 인재는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
단적으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에서 가장 최근 진행한 제3차 기금운용직 채용을 살펴보면 투자실무경력이 7년 이상 필요한 책임운용역을 2명 뽑을 때, 3년 이상 필요한 전임운용역은 28명 뽑았다.
특히 대체리스크관리 부문을 보면 책임 1명을 뽑는 자리에 9명이 몰렸는데, 전임 4명을 뽑는 자리에는 단 5명만 지원했다.
허리급 인재 부족 현상은 중소형 증권사나 운용업권에서 더 뚜렷하다.
국내 한 운용사 채권운용본부는 전체 팀원 가운데 절반은 70년대생, 절반은 90년대생으로 구성됐다. 80년대생은 단 한 명도 없는 구조다. 그들이 기존 직장에서 받는 연봉과 직급을 맞춰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A 운용사 임원은 "요즘 증권사에서는 80년대생이 이미 팀장이나 부서장 직급을 달고 있는 경우가 많고, 통상 30대 때 연봉이 크게 오른다"며 "운용사에서는 그 조건을 맞춰주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형 증권사라고 허리급 인재 유출이 없는 건 아니다.
최근 한 초대형 증권사에서는 1980년대생 채권운용역이 CP 브로커로 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용직보다 성과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영업직을 택한 것이다.
B 대형증권사 인사 임원은 "허리급 인력 이탈은 업계 전반에서 공통으로 겪는 고민"이라며 "단순히 보상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고, 조직 안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PF·ETF·가상자산 등 떠오르는 新 금융…'연봉'으로 허리급 인재 흡수
금투업계에서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상장지수펀드(ETF), 가상자산 등과 같은 새롭게 떠오른 시장의 확장이 허리급 인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지목된다.
C 운용사 임원은 "부동산PF가 호황이던 때 '연봉킹'이 속출하면서 주식, 채권 분야 주니어 인력들이 부동산 IB 부문으로 많이 이동했다"며 "인재가 분산됐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ETF 시장 확대도 인력 수요를 증폭시키고 있다.
ETF 시장 규모가 2020년 52조원에서 2025년 297조원으로 5년 만에 6배 가까이 커지자 운용사와 증권사 전반에서 ETF 관련 인력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그 결과 운용사 역시 ETF 운용 매니저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들이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증권사 ETF 유동성공급자(LP)로 옮기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
D 증권사 ETP 담당자는 "떠오르는 산업은 사람이 필요니까 인력 영입 전쟁이 격화되고 있는데, 특히 ETF가 가장 심한 것 같다"며 "작년 한 증권사가 운용사 ETF 운용역을 ETF LP로 영입하려는 과정에서 운용사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인재난에도 금투업계 임원들은 신입직원을 데려와 처음부터 하나씩 가르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다.
E 대형 증권사 디지털 부문 임원은 "디지털 전환 과제가 시급한 상황에서 신입을 가르치기보다 경력직 인재를 영입해서 실전에 빠르게 투입하는 편이 낫다"며 "회사 내에서 신입 공개채용을 진행하긴 하지만 우리 본부는 필요 없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F 연기금 임원은 "당장 기금 운용수익률을 끌어올리라는 국민적인 미션이 있는 상황에서 실적을 빠르게 낼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신입 배치는 업무 부담만 가중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hrsong@yna.co.kr
송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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