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올림픽 시즌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선수촌에 들어간 각국 선수들에게 삼성의 스마트폰이 전달됐다는 기사다. 누군가는 익숙한 후원 소식으로 넘기고, 누군가는 의례적인 마케팅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이 반복되는 장면은 단순한 제품 배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삼성이 올림픽이라는 무대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6일(현지시간) 개막한 이탈리아 밀라노 코르티나 담페초 동계올림픽 현장에서 각국의 정상급 인사, 글로벌 기업가와 교류하며 스포츠 외교 및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에 나섰다는 기사가 지난 8일 나왔다.
이재용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주관한 갈라 디너에 IOC 최상위 후원사인 삼성전자의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곳에서 이 회장은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을 비롯한 각국 정상과 리둥성 TCL 회장, 올리버 바테 알리안츠 회장 등 글로벌 기업가들을 만났다. 이재용 회장의 올림픽 방문은 지난 2024년 파리 하계 올림픽 이후 2년 만이다.
삼성은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시절부터 올림픽을 후원해 온 국내 대표 기업으로, 이재용 회장은 2018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던 토마스 바흐와 만나 2020년 만료 예정이던 올림픽 후원 계약을 2028년까지 연장한 바 있다.
삼성의 장기 후원은 '한국 대표 기업은 국제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이건희 선대 회장의 철학을 계승한 결정으로 평가된다.
이건희 선대 회장은 1996년 "브랜드 가치는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라며 글로벌 이미지 제고를 강조했고, 같은 해부터 2017년까지 IOC 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 스포츠 외교의 지평을 넓혔다. 특히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은 1988년 서울 올림픽 로컬 스폰서를 시작으로 1997년 IOC와 최상위 후원사(TOP) 계약을 체결한 이후 30년 가까이 이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 국내 기업 가운데 IOC TOP에 포함된 곳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아버지의 유산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출처: 삼성전자]
비슷한 행보는 최근 또 하나 있었다. 지난 1월 말 삼성은 미국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예술산업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전시회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기념하는 갈라 디너 행사를 열었다며 자료를 낸 바 있다.
이건희 컬렉션은 이건희 선대 회장이 1970년대부터 반세기 동안 수집한 미술품과 문화재를 유족이 2021년 국가에 기증하며 탄생한 공공 컬렉션으로, 한국 미술사의 흐름을 집약한 문화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삼성은 진행됐던 첫 번째 전시인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열린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는 이달 1일까지 진행됐으며 6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간 것으로 추정된다.
1월 말 열린 갈라 디너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명예관장은 물론, 미국 로리 차베스-디레머 노동부 장관, 마이클 크라치오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 팀 스콧 공화당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 앤디 킴 민주당 상원의원 등이 참석했다.
재계에서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웬델 윅스 코닝 회장, 제리 양 야후 공동창업자, 개리 디커슨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CEO 등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아버지가 상속한 수집품을 그대로 기증해 민간 외교와 글로벌 네트워크에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재용 회장의 밀라노 동계 올림픽 방문이나 이건희 컬렉션 순회 전시회나 공통점이 있다. 올림픽과 미술관이라는 전혀 다른 무대지만, 아버지의 유산을 아들이 그대로 계승해, '관계'와 '신뢰'의 자산으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용 회장은 기업에 대한 투자나 협상 테이블보다, 스포츠와 문화라는 보편적 언어를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다. 새로 만들어낸 전략이라기보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평생 강조해온 '브랜드·문화·국격'의 철학을 계승하는 셈이다.
삼성이 쌓아온 소프트 파워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이재용의 시간은 그 유산을 변주하지 않고 그대로 활용해 세계와 연결하고 있다. 이는 힘을 과시하지 않는 소프트파워의 전형으로 읽힌다. (윤영숙 차장)
ysyoon@yna.co.kr
윤영숙
ys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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