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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자본금 6천500만 원짜리 회사는 망했는가

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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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6천500만 원. 서울 시내 오피스텔 전세 보증금도 안 되는 돈이다. 그런데 시가총액 4천조 원이 넘는 세계 1등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의 자본금이 딱 이만큼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MS 주식의 액면가는 0.00000625달러다. 우리 돈으로 0.1원도 안 된다. 요즘 한국 재계의 논리대로라면 자본금 6천500만 원짜리 이 회사는 진작에 신용불량자가 됐어야 하고 은행 문턱도 넘지 못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MS는 미국 정부보다 신용등급이 높은 초우량 기업(AAA)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반대하는 재계의 목소리가 강하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상장사 10곳 중 4곳이 빚 독촉에 내몰린다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근거는 '자본금 감소(감자)'의 공포다. 이익잉여금으로 산 자사주는 괜찮지만, 합병 과정 등에서 떠안은 '비자발적 자사주'를 소각하면 법적으로 자본금을 줄이는 감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채권자들이 빚 독촉을 해 회사가 위태로워진다고 한다.

그럴듯하다. 하지만 MS의 사례에서 보듯, 현대 금융에서 자본금은 장부상의 숫자일 뿐이다. 기업의 생사를 가르는 건 자본금이 아니라 '자본총계(순자산)'다.

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하는 순간 현금은 밖으로 나갔다. 그만큼 자본총계는 '이미' 줄어들었다. 자산 유출은 주식을 살 때 이미 끝난 일이다. 이제와서 껍데기 주식을 태운들 회사의 본질 가치가 줄어드는가. 단지 장부상 계정 과목의 숫자만 이동할 뿐이다.

신용평가사들이 바보가 아니다. 공개된 그들의 평가 방법론을 보자.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핵심은 현금흐름과 부채비율이다. 부채비율의 분모는 자본금이 아니라 자본총계다. 장부상 자본금 숫자가 줄었다고 기계적으로 등급을 깎는 AI 봇이 아니란 얘기다. 이미 돈 쓰고 사온 주식을 없애는 행위가 회사의 상환 능력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재계가 '자본금 사수'를 외치며 결사항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회사에 위기가 올까 봐? 아닐 것이다.

'비자발적 자사주'라는 꼬리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완벽한 알리바이다. 계열사 구조가 복잡한 한국에서 A사가 B사 주식을 취득한 뒤 합병하면 비자발적 자사주는 손쉽게 만들어진다. 이 주식들을 살려두면 나중에 표 대결이 필요할 때 백기사에게 넘겨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 감자 절차가 무서운 게 아니라 경영권 방어의 만능키를 뺏기기 싫은 것이다. 재계가 말하는 '회사의 위기'는 엄밀히 말해 '대주주 지배력의 위기'다.

무엇보다 역사를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불과 십수 년 전, 2011년 상법 개정 전까지만 해도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는 '조속히 처분해야 할' 임시 자산에 불과했다. 비자발적 자사주도 예외는 없었다. 그때는 당연했던 상식이 지금은 왜 회사를 망가뜨리는 독약 취급을 받는가.

애초에 비자발적 자사주 탄생 과정도 대부분 회사의 성장이 아니라 최대주주 지배력 강화 과정에서 탄생한 부산물 아니었던가. 특정인의 지배력을 위해 태어난 주식이라면, 이제는 전체 주주의 가치를 위해 산화(散華)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이 '불편한 주식'의 마지막 소임이다. (증권부 이규선 기자)

kslee2@yna.co.kr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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