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당신이 한국에 있고 칩 설계, 팹, AI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면 테슬라에 합류하라."
지난 17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직접 공유한 이 짧은 문장은 K반도체에 대한 자부심보다 우려와 걱정으로 다가왔다.
머스크의 발언은 단순한 구인 광고를 넘어,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축이 '시장'에서 '사람'으로 완전히 이동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머스크의 행보를 이해하려면 그의 광범위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봐야 한다. 테슬라는 단순한 전기차 제조사를 넘어 자율주행과 AI 기반 모빌리티 기업으로 탈바꿈 중이며, 스페이스X는 우주 산업에서 초고성능 연산 반도체 수요를 폭발시키고 있다. 여기에 xAI를 통한 인공지능 사업 확장까지 고려하면, 한국이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설계·공정 역량은 머스크에게 대체 불가능한 전략 자산이다. 이런 머스크가 직접 반도체를 제조하겠다고 나서며 한국의 인재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글로벌 빅테크의 공세가 국내 업계 내부의 갈등과 맞물려 '인재 전쟁'의 양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에 힘입어 억 단위의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같은 업계 내에서도 기업 간 보상 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대기업들조차 핵심 인력을 지키기 위해 출혈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테슬라와 같은 글로벌 선도 기업의 등장은 인력 유출 압력을 다른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억대 연봉은 기본이고, 우주와 AI의 최전선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는 상징적 가치는 젊은 엔지니어들에게 거부하기 힘든 유인책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인재 확보 경쟁에 그치지 않는다. 인력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핵심 기술의 전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기술 안보'의 문제와 직결된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검찰이 중국 최대 D램 업체인 창신메모리(CXMT)로 이직한 삼성전자 전직 임직원 5명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및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한 바 있다.
CXMT는 이직한 직원들이 빼돌린 기술로 2023년 중국 최초이자 세계에서 4번째로 10나노대 D램 양산에 성공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검찰은 이들의 범행으로 한국 기업의 핵심 산업 기술이 유출되고,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인재에 열광하는 이면에는 우리가 수십 년간 쌓아온 공정 노하우와 설계 자산을 단번에 흡수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머스크의 '러브콜'이나 중국의 '백지수표'를 단순히 개인의 영전이나 이직 자유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한 번 유출된 인적 자본은 곧바로 경쟁국의 무기가 되어 돌아오는 부메랑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AI 3대 강국을 목표로 미래 인재 양성이 중요하다고 판단, '국가과학자 육성 계획'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당장 눈앞의 파격적인 처우를 제안하는 글로벌 공세를 막아내기엔 쉽지 않다. 규제와 보상 사이의 괴리를 좁히지 못한다면 정부 주도의 대책은 선언적 의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글로벌 반도체 전쟁은 이제 공장과 보조금 경쟁을 넘어 '누가 더 뛰어난 인재의 마음을 얻고, 그 노하우를 지켜내느냐'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길러냈지만, 그들이 자부심을 느끼며 머물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데는 소홀했다. 사람을 확보하고 지키는 쪽이 기술의 미래를 선점한다. 머스크의 구애를 우리가 '기회'가 아닌 '경고'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산업부 차장)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ysyoon@yna.co.kr
윤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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