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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신탁 청구서③] 289억 철퇴에도 배상은 '글쎄'…항소심서 갈리는 셈법

26.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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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증권사 채권형 랩·신탁 '돌려막기' 사태에 대해 금융당국의 무더기 중징계가 내려진 지 1년이 지났지만, 후폭풍으로 촉발된 민사 소송전은 이제 막 항소심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특히 289억 원에 달하는 당국의 무거운 과태료 처분에도 불구하고, 실제 민사 법정에서는 손해배상 책임을 두고 증권사와 고객 간 희비가 엇갈리면서 행정 제재와 민사 배상 간 뚜렷한 괴리가 나타나고 있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해 2월 하나증권·KB증권·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SK증권·교보증권·유진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유안타증권 등 9개사에 기관경고(SK증권은 기관주의)와 과태료 289억7천200만 원을 부과했다. 채권·CP의 불법 자전·연계 거래를 통한 고객 재산 간 손익 이전, 고유 재산을 통한 손실 보전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민사 법정에서는 위법 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원고가 직접 증명해야 해 제재를 받은 증권사라 해도 반드시 배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국투자증권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약 44억9천만 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고도, MG손해보험·바로저축은행과의 소송에서는 배상 의무가 인정되지 않았다.

일부 배상이 인정된 신도리코 사건은 쌍방 항소로 2라운드를 맞이할 전망이다. 1심 법원은 한국투자증권이 계약 당시 제시한 수익률 7.75%를 기준으로 '받았어야 할 금액'과 실제 만기상환금의 차액을 손해로 산정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손해액은 약 415만 달러로, 단순 원금 결손(약 75만 달러)의 5배를 넘는다. 법원은 여기에 업계 관행과 시장 상황 등을 참작해 배상 비율을 70%로 제한, 최종 배상액을 약 40억 원으로 정했다. 증권사 측은 "제시수익률은 확정금리가 아닌 예상수익률일 뿐"이라며 손해 산정 기준 자체를 다툴 것으로 보이고 신도리코 역시 청구액 약 65억 원 대비 70%로 깎인 책임 비율에 불복한 상태다.

MG손해보험 측은 기수익금이 미회수 원금보다 크다는 1심 법원의 산술적 판단에 불복할 가능성이 크다. 원고 측 논리대로라면 기수익금은 실제 운용 성과가 아니라 돌려막기를 통한 가공 수익에 불과하므로 이를 손해 상계에 넣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는 주장이 2심에서 한층 강화될 수 있다. 바로저축은행 등의 경우 투자 원금과 수익금을 전액 반환받았다는 사실관계 자체를 바꿀 수 없어 항소심에서도 난항이 예상된다.

사태 이후 랩·신탁 시장의 지형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과거 랩·신탁으로 몰리던 시중 자금은 사태 직후 대거 단기금융펀드(MMF)로 피난처를 옮겼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2024년 11월 금융투자업규정을 개정해 투자일임재산의 가중평균 만기를 계약 기간보다 90일 초과해 운용하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며 시장 규제를 대폭 강화한 바 있다.

데이터상으로도 이 같은 현상이 뚜렷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한때 83조3천200억 원(2022년 5월)에 달했던 증권사 채권형 특정금전신탁 수탁총액은 사태 여파로 꾸준히 이탈하며 2025년 5월 40조9천604억 원까지 반토막 났다.

반면 반사이익을 누린 법인고객 MMF가 성장했다. 2022년 5월 135조원 수준이던 법인 MMF는 랩·신탁 사태 이후 이탈 자금을 무섭게 빨아들이며 최근 215조원 규모까지 성장했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쪼그라들었던 랩·신탁 시장이 '기업 맞춤형'이라는 고유의 무기를 앞세워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명맥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과거처럼 무리한 미스매칭 운용을 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랩·신탁 시장 규모가 절반 수준으로 꺾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MMF는 운용 규제가 빡빡한 반면, 랩·신탁은 단일 기업만을 위한 맞춤형 단독 계정 운용이 가능해 여전히 확실한 기업 수요가 존재한다"고 귀띔했다.

향후 남은 변수는 꼬리를 무는 추가 소송 전선과 행정 판결의 파급력이다. 현재 한국투자증권과 교보증권 외에도 제재를 받은 다른 증권사들 역시 줄지어 피소돼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소송 전선에서는 유진투자증권 전 임원에 대한 1심 패소 판결이 나머지 8개사 임직원의 소송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돌려막기 인정, 포괄적 사전동의 부정 등 핵심 쟁점을 모두 금감원 측에 유리하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사 전선에서는 신도리코 2심의 책임 비율 조정 결과가 줄지어 대기 중인 유사 소송의 벤치마크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정금전신탁과 투자일임 간 의무 수준의 차이, 전문투자자의 손실 인지 시점과 범위, 기수익금의 법적 성격 등이 2심 법정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여의도증권가

[연합뉴스 촬영]

kslee2@yna.co.kr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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